상콤 달콤 딸기 주물럭

그리고 아빠의 추억

by 사유경

토요일, 중학교 입학 전 누락된 예방접종을 맞기 위해 둘째와 소아청소년과에 다녀왔다.

왼쪽과 오른쪽 각각 한 대씩의 주사를 맞고 집으로 오는 길.

달콤한 딸기 냄새가 나를 붙잡았다.


"우리 딸기 먹을래?"

"엄마, 정말 좋죠!"


가게 안으로 들어가 팩에 담긴 딸기, 스티로폼 상자에 담긴 딸기, 과육이 큰 것, 조그마한 것들 사이에서 어떤 것을 고를까 입맛을 다시며 고민했다.

우리의 선택은 스티로폼 상자 안에 담긴 과육이 큰 딸기.

큰 과육만큼이나 달콤하고 상큼한 향기가 묵직하게 올라와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 제가 들게요."

"아냐, 너 주사 맞아서 팔 아프잖아. 엄마가 들어도 돼."


딸기를 먹을 생각에 걸음이 조금 빨라지는 둘째와 나.


집에 도착하자마자 겉옷을 벗어두고 딸기 손질을 시작했다.

먹기 쉽게 과도로 꼭지를 잘라내고 있는데 벌써부터 딸기의 향이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엄마, 딸기 냄새 진짜 좋아요."

어느새 막둥이도 싱크대 가까이에 와서 코를 킁킁거렸다.


딸기가 무르지 않게 흐르는 물에 살살 씻어내서 물기를 탁탁 털고 접시에 예쁘게 담아냈다.


"얘들아, 딸기 먹자."

딸기 접시에 옹기종이 모여서 딸들이 딸기를 한 입씩 베어 물었다.


"응? 으응?"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나도 얼른 한 입 베어 물었다.

"으응? 응?"

역시나 딸들과 같은 반응이었다.

"이거, 맛이 없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또 맛이 있는 것도 아냐. 그냥 딸기야."

막둥이가 이번 딸기의 맛을 정의 내렸다.

그래, 그냥 딸기야.


그래도 곧잘 먹어주는 첫째, 둘째와는 다르게 막둥이는 영 손이 잘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 아빠가 어릴 때 잘 드셨던 주물럭 만들어보자."

"엄마, 주물럭은 돼지고기로 만드는 거 아니에요?"

"어, 아냐. 아니, 돼지고기 주물럭도 있는데 이건 딸기 주물럭이야."


나는 부엌으로 가서 큰 그릇과 꿀,매셔를 가지고 왔다.


"여기에 딸기 좀 넣어봐."

막둥이가 그릇에 딸기를 열댓 개쯤 넣어주자 매셔로 꾹꾹 눌러 으깨주었다.


"아빠 어렸을 때 할머니가 이렇게 딸기를 으깨서 냉동해 두셨대. 그러면 아빠는 냉동실에서 딸기 꺼내서 우유랑 잘 섞어서 간식으로 드셨지. 완전 제대로 된 딸기 우유. 할머니는 비닐장갑 끼고서 손으로 주물주물하면서 으깨셨어."

"그래서 주물럭이에요?"

"아마도?"


주물럭은 왜인지 덩어리가 좀 있어야 맛있게 느껴지기에 듬성듬성 으깨주고 꿀을 조르르 부어 잘 섞어준 후 맛을 봤다.

약간 단 맛이 모자란 것 같아 이번에는 설탕을 아주 조금 넣어줬다.

음, 이 정도면 되겠어.


"막둥아, 우유 가져다줄래?"


으깨어진 딸기가 담긴 그릇에 우유를 쪼르르 부었더니 연분홍색으로 색이 바뀌면서 벚꽃 느낌이 나는 것 같았다.


"엄마, 완전 예뻐요. 맛있을 것 같아. 저 먼저 먹어도 돼요?"


막둥이가 얼른 컵을 들고 오며 물었다. 나는 컵에 한 모금 정도의 양을 따라주었고 막둥이는 한입에 마셨다.


"완전 맛있어요. 엄마도 드셔보세요. 언니들도 먹어봐."

"저는 아까 딸기 많이 먹어서 배불러요. 이따 먹을게요."

"엄마, 저는 딸기 본연의 맛이 좋습니다."


그래, 먹을 사람만 먹어라.

나는 막둥이의 컵 가득 딸기 주물럭을 담아주었다.


"이거 남은 거는 아빠 시원하게 드시게 냉장고에 담아둘게. 혹시 먹고 싶으면 더 따라 마시고. 다 먹으면 아빠 꺼 다시 만들자."


뒷정리를 하면서 5월쯤에는 아라동에 가서 딸기를 많이 사다가 예전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냉동실 가득 딸기 주물럭을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유에 섞어 마셔도 좋고, 탄산수에 섞어서 에이드로 먹어도 좋고.


오후에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딸기 주물럭을 건넸다.

"어? 이거 나 여렸을 때 엄마가 자주 해 줬었는데."라며 숨도 쉬지 않고 한 입에 꿀꺽.

"더 없어? 더 주라."

"아니, 아빠. 지금은 없고 이따 내가 만들어줄게요. 엄마한테 배웠어요."

아빠의 주물럭을 만들어드릴 생각에 막둥이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신이 났다.


남편은 참 좋겠다.

상콤 달콤한 딸기 주물럭에 어머니의 사랑과 딸의 사랑 모두를 담을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