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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Apr 10. 2024

슬럼프

김길웅, 칼럼니스트



일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두 번쯤 슬럼프를 겪는다. 잘 나가던 운동선수가 어느 수준에서 주춤했을 때, 이를 흔히 ‘슬럼프에 빠졌다’라고 말한다. 슬럼프가 온다는 것은 뭔가 한계에 부딪쳤다는 적신호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슬럼프가 나타난다는 것은 그동안 자기 분야에서 유능하게 잘 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늘 지지부진했던 자에겐 슬럼프라는 게 찾아올 리 없다. 뚜렷이 이룩한 성과를 넘어 더 이상의 진전 없이 정체돼 있는 상황, 그게 바로 슬럼프다.



연습을 반복하는 데도 기대하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 아무리 애써도 더 나아감 없이 부진하거나 기존의 성과보다 나아지기는커녕 더 밑돈다고 판단되는 경우, 대개 좌절하거나 의욕 상실에 이르기도 한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위기 국면이다. 자신을 돌아봐야만 한다. 잘못된 방식을 고집해 오진 않았는지, 이를 바꿔야 하는 게 아닌지, 더는 억지로 하려 말고 잠시 지금의 일에서 떠나 휴식을 처한 뒤에 다시 새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머릿속에 쌓인 묵은 찌꺼기를 털어내 정신을 맑게 함으로써 자신을 정시(正視)해 볼 필요가 있다. 씻지 않은 그릇에 물을 담으면 그 물이 더 더러워질 것은 정한 이치다. 정신을 맑게 해 다시 시작하는 게 백 번 맞다. 애써 힘을 쏟아가며 무턱대고 하는 반복 학습은 효과를 떠나 무모하다. 오히려 슬럼프를 더 심하게, 또는 새로운 슬럼프의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슬럼프는 일시적인 것이다. 어떻게든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오거나 창조적인 역량을 회복할 수 있는 상태쯤으로 봐도 좋다. 과로, 지루함,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의욕과 에너지를 완전히 잃는 번아웃과는 확연히 다르다. 번아웃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거나 기피하려는 심리적 상태다.



슬럼프에 대해 새롭게 다가가면 어떨까. 챔피언은 챔피언이기 때문에 맞닥뜨려야 하는 슬럼프를 겪는다. 챔피언이 아니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슬럼프에 빠져 있다면, 나도 이 방면에 챔피언이 됐구나 생각하고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울 일이다. 슬럼프가 더욱 성장하도록 도와 나설 것이다.



글쓰기에도 슬럼프가 있는 게 분명하다. 소재가 고갈됐거나 쓰다 막혀 한 줄도 나아가지 못하는 수가 있었다. 내 문재(文才)가 이쯤이려니 하다가도, 지난 30년을 허송한 것 같은 허무함에 불끈 주먹을 쥐고 자신을 호되게 몰아친 적이 몇 번 있었다. 몸안의 세포들이 호응해주는 데 힘입어 가파르게 그 한 고비를 넘겼다. 일흔 살 목전에서 인생을 슬퍼했는지 분명치 않다. 철학이 빈곤했으려니 한다.



근래 들어, 자판 위에서 손가락이 신음하고 있다. 30년을 쳐 온 타자인데 이웃한 모음끼리 자음끼리 차례를 잊고 왔다갔다 한다. 뇌와 손 사이, 명령 하달 체계에 질서가 흔들리는 것 같다. 분명 슬럼프다.



바르르 손가락이 떨리기도 한다. 머리가 맑을 때, 새벽 3시에 안두를 꺼당겼더니 좀 낫다. 새벽, 싱싱한 동살, 그 날것의 서기(瑞氣)를 빌리는 수밖에 없다는 단안을 내렸다. 내 간절함을 알아챈 손가락이 톡톡 튀는 시늉이 한창이다. 머릿속도 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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