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주일보 Apr 11. 2024

선거 후가 문제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엊그제 끝난 22대 총선은 그야말로 여야 간에 한바탕 치열한 접전으로, 엎치락뒤치락 진흙탕 속 이전투구였다. 정권 심판이냐, 야당 심판이냐를 놓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벌인 한 판 승부란 말이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필자는 역대 선거를 빠짐없이 치른 세대인데, 이번 선거처럼 말로 치고받는 선거는 처음 보았다.



말처럼 쉽게 나오는 게 없다. 급한 대로 불을 끄고 보자는 수단이 되기 일쑤이니, 말처럼 위험천만한 게 없잖은가. 말은 경우에 따라 마구 뱉어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안길뿐만 아니라, 심한 말은 한방에 상대를 죽이는 살상무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고등학교 교단에서 한평생 국어를 가르쳐 온 국어 선생이다. 일제강점기에 온갖 탄압 속에서 한글학자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 온 자랑스러운 우리말이고 우리글이 아닌가. 입에서 나오면 말이라고 여야 정치인들의 입에 오르내린 말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다. 그 막말들….



유세 초에 나왔던 말들은 기억에 없다. “대파 한 단 875원” 이후, 앞서 있었던 “칼틀막, 입틀막도 부족하니 이제는 파틀막까지 한다.”에 이어 사전 투표 첫날 “왜 대파를 들고 투표장에 들어가면 안되느냐?”고 야가 여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가만있을 여인가. 야를 향해 쓰레기와 같다는 비유를 한 그 즈음일 테다. 곧바로 반격에 나선다. “일제 샴푸, 위조된 표창장, 법인카드에 여배우 사진을 들고 투표장에 가면 안되느냐”고 맞받았다. 자극적 언사들이다.



총선은 이 나라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다. 국회는 나라의 법을 만들고 주요 정책을 의결하는 입법부의 최고기관이고, 그러기 위해 선거에 의해 뽑힌 사람이 국회의원, 그들을 선출하는 게 바로 총선이다. 능력이 출중한 인물을 뽑아야 하는 중차대한 선거다. 헌데 그런 선거를 주도해야 할 정치 지도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하나같이 상식 이하로 저열하고 몰상식하기 짝이 없다. 말하는 이에게서 지적 면모나 품위라곤 찾아볼 수조차 없다. 말하는 이들, 이 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지도층 인물들이 아닌가.



상대의 약점을 늘어놓아 반사 이익을 노리는 어처구니없는 화법, 속사포로 쏘아대는 비난의 말, 여과없이 튀어나오는 욕지거리 그리고 상스럽기 짝이 없는 악다구니에 국민들은 지칠대로 지쳐서 신물이 날 지경이다. 이렇게 구지레하고 지저분한 선거는 처음이다. 민주주의를 시작하던 때, ‘못 살겠다 갈아보자.’고 외쳤던 자유당 시절에도 이러지 않았다.



사람을 아연실색하게 한 말이 있었다. “그들은 개같이 정치하는 사람들.” 여가 야를 향해 한 말이다. TV를 시청하다 귀를 의심했다. 아니, ‘개같이’라니. 저는 사람이고 남은 다 개란 말인가. 다른 것을 다 떠나서 갑자기 우리말이 슬프다. 우리말은 사람을 개라 하는 데 쓰는 말인가. 기가 막혔다. 논란이 있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왜 우리말을 함부로 하는가. 한심한 일이다.



선거 후가 문제다. 다시 안 볼 것처럼 하고도 서로 살갑게 담론할까. 단절의 벽을 허물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인데. 정권 심판, 야당 심판, 그 정쟁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작가의 이전글 제주해녀 명맥 잇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