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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Apr 14. 2024

내 속에 있는 나였던 그 아이

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미리 계획되고 약속된 일정이 아니면 주말에는 ‘집콕’을 원칙으로 하는 나에게는 참 희귀한 일이었다. 온전히 휴식을 취해야 하는 토요일 오전, 아내와 막내아들에게 외출을 종용했으니 말이다. 이유는 ‘백호기 축구대회’ 결승전 관람.



평소 손흥민이 출전하는 국가대표 경기도 챙겨보지 않는 내가 축구경기를 보러 가자며 나서는 모습에 아내는 “네 아빠가 낯설다.”며 한마디 한다.



어렴풋한 기억으론 고등학교 재학 중에도 2학년 때쯤 준결승을 한 번 치렀던 오현고와의 경기가, 그것도 대망의 결승전이 열린다고 하니 어디엔가 꽁꽁 숨겨져 있던 애교심이 불쑥 요동친 모양이다.



경기 시작 전부터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후배들의 모습은 나도 모르게 발로 박자를 맞추며 응원가를 따라 부르게 했다. 순간 지금은 유물이 된 교련복을 입고 저 자리에 서서 응원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묘한 기분에 빠지기도 했다. 갑자기 눈물이 많아지면 갱년기라고 하던가, 백호기 축구대회 결승전이 나의 갱년기를 확인시켜 주는 순간이었다.



경기마저도 드라마틱 했다. 전반 이른 시간에 선취점을 내주며 경기 내내 조마조마하게 하더니 후반에 만회 골, 연장전에 추가 골을 넣어 만들어 낸 대역전극은 찬 바람 속에 오들오들 떨며 자리를 지킨 아내와 막내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덜게 했다.



아내는 경기 후에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막내아들에게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는 내 모습을 보며, “평소에는 아들하고 대화가 없더니, 고등학교 추억이 참 좋긴 좋네.”라 한다.



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벚꽃 없는 벚꽃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행사장에서 마시는 맥주 한 잔이 얼마나 달콤하고 시원하던지 이미 내 마음속엔 벚꽃이 요란하게 피어 있었다.



74편의 시들이 300개가 넘는 질문으로 이뤄진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 44번째 작품에는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라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을 떠올릴 때마다 틀에 박힌 사회체계 안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른스러움을 강요받는 우리로서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굳이 답한다면 사라졌다기보다는 애써 잊으려 한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2시간 남짓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한 축구경기 관람은, 사라지지도 잊을 수도 없는 내 속의 아이를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저마다 “나는 절대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나는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아 재미있게 살고 싶어.”했던 피터팬의 마음을 품은 채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이 내일이다. 오늘 자정이면 아침마다 받던 인사도, 거리마다 내 걸린 약속과 다짐도 사라질 것이다. 큰 기대는 않는다. 더도 덜도 말고 아이들도 어른들도 재미있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선량들이 선택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누구든 ‘자기 안에 있는 나였던 그 아이’를 언제나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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