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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Apr 25. 2024

감귤꽃 솎다

고권일 농업인·수필가



사람 그리워/ 등불 켜는 무렵에/ 벚꽃이 지네.



이맘때면 소환되는 ‘최애(最愛)’ 하이쿠 암송하며, 벚꽃을 보냈다.



나이 들수록, ‘벚꽃 엔딩’ 때면, 가슴 철렁 내려앉는다



고작, 겨울의 종언(終焉) 고하는 촉촉한 봄비 한 자락에, 세상천지 가득했던 벚꽃의 분분한 군무(群舞)가, 일순간 막 내리다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지만, 허무하고 무상하다. 벚꽃의 낙하처럼, 극단적으로 실존 포기하는 생명체 본 적 없다. 적어도 내 기억의 창고 안에는.



‘사쿠라’가 유년의 기억에 낙인처럼 선명하여, 벚꽃은 일본에 대한 선입관과 함께 피고 진다. 불꽃처럼 타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 절멸하는 일도양단(一刀兩斷)식 낙화에, 사무라이와 가미카제들의 실루엣이 겹친다. 막부시대가 강요한 상명하복의 폭력적 질서. 그 제물인 사무라이들이 선택했던 할복의 무모함. 바위에 부딪히는 계란처럼 적함을 향해 돌진했던 가미가제들의 처절했던 비행의 굉음이, 환청으로 들린다. 요즘 일본은 평화로운가. 사라진 벚꽃에 대한 그리움은, 일본에 대한 노파(老婆)의 의구심(疑懼心)과 함께 봄밤의 뒤척임 속에 깊고 아뜩하다.



이윽고 벚꽃이 가뭇없이 사라진 빈 자리. 가지마다 새의 부리같은 여린 새잎들, 혁명의 불꽃처럼 용출한다. 그러면 됐다. 머지않아 벚나무의 깊은 그늘이, 낙화에 섭섭했던 가슴 청량한 신록(新綠)으로 채워줄 것이기에.



각설(却說). 벚꽃 질 무렵이면, 하우스 감귤꽃 만개하여 흥청망청이다. 벚꽃의 아름다움에 뒤지지 않고, 더구나 향기는 벚꽃에 비할 수 없이, 혼을 쏙 빼어놓을 만큼 그윽하고 진하다. 그렇지만, 감귤꽃은 완상(玩賞)의 대상이 아니다. 일용할 양식인 열매를 담보할, 일 년 농사의 시금석이다. 감귤꽃 솎아내야 하는, 농부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일깨우는 경종(警鍾)이다.



올해는, 감귤꽃 너무 많이 피었다. 사람 세상은 저출산으로 미래가 불안한데,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흥부네 자식들처럼 올망졸망이다. 솎아주지 않으면 내년 해거리 명약관화(明若觀火)하고, 소과(小果) 되어 상품성 잃어버린다. 결국 나무마다 개화 상태 살피며 솎아야 해서, 진척이 더디다. 그러다 보니, 적화하느라, 봄나들이는 커녕 하루 해 노루꼬리처럼 짧다. 솎기 작업은, 꽃에서 끝나지 않는다. 얼마 후 열매가 맺히면, 병들거나 기형인 것, 너무 크거나 작은 것들은 솎아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나무들 쓸데없는 열매에 헛심 쓰지 않고, 탐스럽고 고품질인 열매들을 키워낼 수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총선이 끝났다. 대한민국 떠받치는 입법부 대표할 300명이 선출되었다.



투표는, 후보들 중 최선을 선택하고, 불량 후보들은 솎아내는 엄중한 국민의 심판이다.



그런데 눈동냥 귀동냥으로 알았지만, 시정잡배 못지않은 사람들도 버젓이 당선자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찌하랴. 국민들이 선택한 의원님들인 것을. 부디 환골탈태(煥骨脫胎)하여, 나라와 국민 위한 상머슴 되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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