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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May 23. 2024

은수저

김길웅, 칼럼니스트



식기 재료로 은은 고급 재료다. 이름값으로 빛난다. 병균 번식을 막는 살균효과만으로도 단연 으뜸이다. 비소 등 독이나 중금속 성분이 닿으면 검게 변해 독살 시도를 막으려 궁중에서 많이 쓰였다. 그래서 은수저는 예로부터 여염집보다는 부잣집의 상징으로 상당히 귀중품 대접을 받아왔다. 자연히 무병장수를 비는 뜻에서 결혼식 때, 아이를 낳았을 때, 결혼 25주년 은혼식 때 예물로 쓰인다.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계급론에서 흙→플라스틱→놋→동→은→금→다이아몬드로도 윗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다는 말은 부잣집 태생이라는 뜻의 관용어가 됐다. 문득 김광균의 시 ‘은수저’가 떠오른다.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아이가 없다/ 아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아기가 웃는다/ 아기는 방 속을 들여다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후략)”



죽은 자식에 대한 슬픔을 은수저에 의탁했다. 떠나버린 아기에 대한 비통한 심경을 극도로 절제하면서 담담한 어조를 잃지 않고 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산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더욱이 한참 재롱을 부리다 어린 나이에 자식이 죽으면 마음이 오죽 가슴 아플 것인가. ‘한 쌍의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고 했다. 어느새 후비고 들어온 은수저가 읽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시 속 화자는 아이에게 은수저로 밥을 떠먹였었다. 그런 금쪽같은 아이였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였는데….



60년이 지난 옛일이다.



결혼 때 은수저 두 쌍을 받았다. 아내에게 보낸 소포를 풀자 눈부시게 반짝이는 은수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뒤적이다 두 쌍의 숟가락 끝부분에 새겨진 이름을 발견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리는 아내.



‘규은이, 그애가…. 포항으로 떠나간 지 오래됐는데, 내가 결혼하는 걸 어떻게 알고…. 내 주소는 어떻게 알아냈으며….’



동창생이란다. 피란민인 그애가 초등3학년 때던가 전학 와 중학교까지 한 반이었다는 동기 동창생. 가까이 집을 정해 살아 친하게 지낸 데다 낯선 곳에 와 여러 아이들과 잘 어우러지게 아내가 징검다리 구실을 했던 모양이다. 자기를 무척 따랐다는 게 그 뉘앙스 같았다.



어릴 때의 우정은 더 도타운가. 몇 년 전, 친구가 아내를 찾아왔잖은가, 암으로 투병 중인데 제주에서 살면 좋을 것 같다며 함께 알아봐 줬으면 했다. 관광객이 들끓는 우도와 일출봉이 눈앞인 구좌 종달리 몇 군데를 들러봤다. 가까이 도시 기능을 갖춘 성산포까지 살핀 뒤 포항으로 돌아갔다. 이곳이 마음에 들면 올 수도 있으려니 했는데 기별이 없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거처를 옮기는 게 쉬운 일인가. 혹여 건강이 악화됐는지도 모른다.



은수저는 답잖게 녹이 잘 슨다. 치약으로 닦으면 반들반들 광발을 낸다. 이젠 아내의 손도 고단한지 은수저가 식탁에 오른 지 오래다. 스테인리스 수저가 그 자리를 꿰찼다. 손 한 번 까딱하는 데도 쉬운 쪽이 최우선이다. 수저통에서 은수저가 녹슬어 있겠다. 내가 한번 닦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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