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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May 26. 2024

‘어른 김장하’를 만난다면

김형미 문화부장



“나는 아프고 괴로운 사람을 상대해서 돈을 벌었다. 다른 직업을 선택했더라면 그 돈을 가지고 호의호식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어서 차곡차곡 모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서 이 일을 시작했다.”




‘어른 김장하’는 지난해 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경남 진주의 어느 한약방, 그곳에는 60년 동안 한약방을 지킨 한약사 김장하 선생이 있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도 인터뷰 한번 하지 않고 많은 이들을 도우면서도 자신의 옷 한 벌 허투루 사지 않는 사람. ‘어른 김장하’에 대한 설명이다.  




당시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못했다. 아쉬워하던 차에 최근 TV에서 ‘어른 김장하’를 만나게 되면서 그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경남 사천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아홉 살에 한약업사 자격을 얻어 1963년 사천시 용현면에 남성당한약방을 개업한다. 9년 뒤 진주시 동성동으로 이전한 후 약 5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켰고, 2022년 5월 은퇴하며 문을 닫고 평범한 할아버지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100억원이 넘는 사재를 들여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한다. 이사장을 맡으며 체육관과 도서관 등 모든 학교시설을 완비한 후 1991년 국가에 기부한다. 20대 젊은 시절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 




현재까지 그에게 장학금을 받은 사람은 1000명이 넘는다. 한차례만이 아니라 고등학교와 대학교, 대학원까지 꾸준한 지원이었다. 




장학금은 받은 학생들이 어떻게 보답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내게 고마울 필요가 없다. 나도 이 사회에서 받은 것이니 갚으려거든 이 사회에 갚으라’고 답하는가 하면, 많은 지원에도 사회의 대단한 인물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람에게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명신고등학교 이사장 당시 전교조 해직 사태가 터졌으나 정부의 압력에도 단 한 명의 교사도 해고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실 지원 분야도 다양하다. 교육, 사회, 문화, 예술, 역사, 여성, 인권 등 지역사회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




1990년대 옛 ‘진주신문’의 주주·이사로 참여했고, 지역 서점인 진주문고가 어려웠던 시기 지역 서점을 살리기 위해 애썼으며, 여성평등기금 조성으로 가정폭력 피해 여성 지원에도 힘썼다. 




진주의 극단무대와 연습 공간 마련도, 진주여성민우회 창립도 그의 도움이 있었다. 




2000년에 설립한 남성문화재단을 통해 다양한 후원을 이어왔던 그는 2021년 재단이 해산되자 당시 남은 기금마저 전액을 경상국립대학교 발전 기금재단에 기탁하며 사회에 환원한다. 




그는 항상 걷는다. 사부작사부작 종종걸음이 인상적이다. 평생 자신 소유의 차를 가져본 적 없으며, 해외여행도 6·25 전쟁 때 전사했다고 알고 있었던 친형이 살아있다는 연락을 받고 2005년 평양을 방문한 것이 전부다.




그를 우연히라도 만난다면, 큰절을 올리고 싶다. 그럼 아마도 ‘빙삭이’ 웃으며 손사래를 칠 것만 같다. 




사실 큰절은 그의 미소를 보기 위한 매개일 테고, ‘이 사회에 나눔의 씨앗을 뿌려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꼭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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