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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May 30. 2024

벗, 그리고 갑장

김희운 시조시인



여행하기 좋은 5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주에는 가까운 벗들과 함께 매물도를 갔다 왔다. 날씨는 좋은데 바람이 세서 배편 출항 여부가 불안하여 섬에 드는 일정을 조금 조정하고 매물도로 이동했다.



여행은 벗과 함께이기에 자연스럽게 참석하지 못한 벗들을 아쉬움으로 소환했다. 벗과 그 벗의 주변 얘기들, 몇 년 몇 월생이고 무얼 좋아하고 등등 백화점식 나열이 주류를 이룬다. 선배나 후배, 동창, 갑장이니 동갑이니 하면서 벗들을 불렀다.



10간과 12지를 간지라 하는데 10간은‘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이고, 12지는‘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인데 이를 조합하여 60갑자로 표현한다. 갑장은 60갑자가 같다는 뜻으로, 같은 나이를 이르거나 나이가 같은 사람을 말한다. 12지에 특정한 동물을 할당하여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의 순서로 해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데 이것을 띠라고 한다. 나는 신축년에 태어났으니 소띠이다.



나는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대처로 나왔다. 대처로 이끌린 날, 운동장 구석 수돗가에서 손도 씻고 얼굴도 몸도 씻었다. 어린 내게 어머니의 손길은 따스함이었다. 어릴 적에 고향에 남겨졌던 터라 그 손길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그 부드러움에 교실 유리창 너머로 쳐다보는 동네 갑장 조무래기들의 시선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한해 한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걱정은 늘어난다. 건강 걱정, 자식 걱정, 그렇게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 벗은 더운 여름 청량감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한 동네에서 같은 해에 태어난 벗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신축년에 태어난 갑장들이 60명이 넘었다. 가히 베이비붐이라 하겠다.



5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고향의 벗들과 갑장 모임을 하고 있다. 대처에 나와 살던 내게 갑장들과 함께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갑장 남자들만 모이고 있는데도 참여하는 인원이 30명이나 된다. 한 동네 갑장 숫자로는 상당히 많은 숫자이다.



벗들과 오랫동안 함께 하지 못해 소중한 추억들이 가물가물하고 예전의 조무래기 얼굴들도 가물거리지만, 갑장이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생면부지나 다름없는 나를 끼워준 갑장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모임 중간에 가입하게 되면 분위기가 흐려질까 염려하여 선뜻 문을 열어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나를 받아준 벗들이 고맙고 그 고마움을 앞으로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앞으로 쭉 어울리며 함께 가고 싶다. 갑장, 그래서 벗들이 좋다. 힘들게 투병 중인 갑장이 있다. 힘을 내라 함께 하자. 쾌유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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