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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May 30. 2024

뒤범벅 가족관계, 비로소 제자리

김영란, 시인·4·3조사연구원



정부는 지난 5월 13일, 제주4·3평화공원 교육센터에서 유족 200명 및 관계자를 대상으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이처럼 정부가 제주 현지에서 4·3유족과 관계자들에게 직접 설명회를 가진 것은 예사롭지 않은 행정서비스이다.



필자는 이전부터 4·3가족관계법 개정의 당위와 시급함을 이 지면에 소개한 바 있다.



4·3당시 아버지의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호적에는 작은아버지의 자식으로 등재돼 사촌 형제들과 형제로 살았거나 할아버지의 자식으로 살아야 했던 기막힌 삶. 이를 정정하기 위해 무려 5년 여에 걸친 법정 투쟁 끝에 가까스로 아버지의 자식으로 제적(호적)에 등재된 사연, 이뿐만 아니라 이번 시행령 설명에서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른 ‘사후 양자’ 관련 사연도 이미 소개했다.



문 아무개 씨는 사후 양자다. 4·3당시 군법회의로 육지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950년 6·25전쟁 직후, 행방불명된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여인의 양자로 입적했다. 양부의 제사며, 벌초는 물론, 집안일까지 도맡아왔다. 그러던 10여 년 전, 양어머니마저 별세해 양부모 제사와 벌초 등을 혼자 다 해왔지만 사후 양자라는 이유로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이다.



이처럼 뒤틀린 가족관계와 4·3으로 멸족돼 대를 이은 양자 입적에 대해 실질적인 양자의 지위 보장 요구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다행히 4·3가족관계 관련법은 개정됐고 시행령 또한 입법 예고됐다. 이제 틀어진 가족 관계는 바로 잡혀 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시행령 입법예고 설명회는 박수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가족관계법 시행령으로 구제받는 사후 양자를 호주 승계자로 제한한 사실을 두고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했던 4·3유족회 관계자가 “자식이 없어서 사후양자로 입적됐다면 좀 더 폭넓은 검토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주장을 했다. 사후 양자로 인정했다면서 굳이 호주승계라는 단서를 달아놓은 것은 다소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한편 4·3국가보상금 신청은 본래 2025년 5월 31일까지였다. 그러다가 2026년 12월 31일까지로 1년 7개월을 연장했다. 4·3희생자에게 지급되고 있는 국가보상금 신청 실적이 당초 계획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고령의 유족이 보상금 신청 절차에 쉬이 다가가지 못하는 등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터. 그래서 4·3국가보상금 신청 기간 연장은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이다.



4·3국가보상금 신청기간 연장과 사후양자 인정 요구가 제주특별자치도의 요청이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입법예고 중인 ‘제주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이 다음 달인 6월,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를 거쳐 오는 7월 31일부터 시행된다.



70여 년 넘게 뒤범벅된 가족관계로 살아온 4·3유족의 맺힌 한이 비로소 풀리게 된다.



모처럼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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