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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Jun 03. 2024

6월, 비극과 절망을 넘어서야 한다

허정옥 제주장수복지연구원장/논설위원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인구통계에 의하면, 2024년 4월 말 현재 제주도 인구는 67만2775명, 남자 33만6674명, 여자 33만6101명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많다. 제주도는 이제 돌, 바람과 함께 여자가 많은 삼다도가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제주도 생활상태조사’를 보면, 여자 100명당 남자 인구는 1928년 93.9명에서 1930년 85.9명, 1944년 85.6명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어서 해방 후 1949년 대한민국이 실시한 제1회 총인구조사에서는 82.1명, 6.25전쟁 직후인 1953년에는 79.1명으로 더 떨어진다. 전체 인구 24만8891명 중 여자가 13만8990명(56%)으로, 남자 10만9901명(44%)보다 2만9089명(12%)이 많다. 이는 사건과 전쟁을 겪으며 남자 사망자와 전출자 수가 급증했음을 시사한다. 4·3 평화재단의 관련 조사에 의하면 4·3의 인명 피해는 2만 5000에서 3만 명으로 추산된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10이 살해된 셈이다. 이처럼 삶의 흔적이 그저 숫자로만 표기된 죽음의 실상을, 한라산은 낱낱이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살려줍서 살려줍서. 지은 죄 어시 죄인 되엉 두 손 삭삭 빌어도, 총 맞앙 죽곡 대창에 찔영 죽곡(김종두, 사는 게 뭣산디)’이라 울부짖는 여인들을 가슴에 끌어안고 통곡했으리라. 




현기영 선생의 역작, ‘제주도우다’는 당시의 상황을, 13살 소년의 눈으로 통찰한다. ①어떤 때는 밤중에 방향도 모르게 총성이 울렸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다투어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누가 쫓기고 있는가 보다. 우리 집으로 뛰어들지 몰라. 공순이네 네 살짜리 아기에게도 그 공포가 전해졌는지 늘 입에 물고 있던 울음이 사라졌다. 




②남편 이름을 부르면서 그 아내를 나오라고 하여 일어나려 하자, 시어머니가 그녀를 주저앉혔다. “아이고, 며늘아, 니가 무사 죽느니. 나가 죽으켜. 내 아들이니 나가 대신 죽으켜. 아기를 잘 키우라.” 




③열여덟 살, 스무 살의 두 형제가 토벌대에 잡혔다. 끌려가는 두 손주를 제발 살려달라고 할머니가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애원했다. 분대장이 말했다. “저 할머니 불쌍하니 하나만 돌려줘 버려!” 




④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보도연맹 가입자, 요시찰자, 입산자 가족 등이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붙잡혀 집단으로 희생됐다. 전국 각지 형무소에 갇혔던 4·3 사건 관련자들도 즉결 처분됐다. 




⑤일본 노동자들은 순종적인 데 반해 우리 제주 출신들은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더란 말이여. 우리 제주인은 성질이 좀 거칠고 완강해. 사람은 자기가 태어난 산천을 닮는다고 하는디, 우리 제주도가 바람 많고 돌투성이에 거친 화산섬이라 그럴까?




⑥작년에 삼팔선이 그어진 직후에 일본에서 귀향민이 들어올 때 맥아더 사령부가 물었주. 남과 북 중에 어느 쪽으로 가겠느냐고. 그때 우리 제주 백성들은 이렇게 대답했주. “우린 북조선도, 남조선도 아니고 제주도우다.”




1954년 9월, 한라산 금족(禁足) 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제주 4·3 사건은 6·25 사변을 거치고서 7년 7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90세 노인이 된 소년에게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몫까지 살아내려고 이를 악물고 살았주.” 




현기영 선생은 말한다.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라고. 6월은 우리에게 그러한 시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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