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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Jun 17. 2024

곶자왈은 얼마나 큰 우주인가

박상섭 편집위원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정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다. 맞다. 저 조그만 대추도 익기 위해서는 알맞게 내리쬐는 햇빛뿐만 아니라 태풍도 견디고 천둥도, 벼락도 한 번 맞아봐야 한다. 단맛과 쓴맛을 모두 겪어야 색깔이 변하며 익어가는 것이다.




대추 안에는 어찌 초승달만 있겠는가. 보름달도 여러 번 품어서 둥글게 둥글게 모양이 잡힌 것이다. 그래서 각지지 않고 세상과 통한 것이다. 시인은 대추 한 개에도 우주가 담겨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추 한 개에도 이렇듯 절절한 사연이 있다. 그렇다면 다양한 식물이 살고 있는 ‘제주의 허파’ 곶자왈은 얼마나 큰 우주인가. 곶자왈은 황무지를 뜻하는 ‘자왈’과 나무숲을 뜻하는 ‘곶’이 결합된 단어다.




이곳에는 때죽나무,  다양한 고사리·이끼류, 참꽃, 새우란,  나도히초미, 으름꽃, 산자고, 백서향, 복수초 등 무수한 식물이 살고 있다.




예전에 배우 이영애를 보고 ‘산소 같은 여자’라고 했지만 곶자왈이야 말로 산소가 뿜어 나오는 산소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서향, 새우란의 향기가 담긴 산소가 얼마나 맛있겠는가. 또한 곶자왈은 빗물을 저장하고 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도내 곳곳에서 개발이 이뤄지면서 곶자왈이 줄어들고 있다. 제주의 허파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그래도 곶자왈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곶자왈공유화재단(이사장 김범훈)은 최근 기금 6억원을 들여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31번지 4만9388㎡(약 1만5000평)를 매입했다.




이곳에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 1급인 제주고사리삼 군락이 있다. 특히 대규모 관광지와 인접해 있어 훼손 및 개발의 위험성에 노출된 곳이다.




2007년 설립된 제주곶자왈공유화재단은 기업이나 시민의 후원으로 사유지 곶자왈을 매입하고 있다. 지금까지 134억원을 들여 곶자왈 108만㎡(약 32만평)를 매입했다.




제주곶자왈공유재단과 후원자의 산소 같은 마음이 우리의 우주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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