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대왕고래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큰 동물이다. 다 자라면 몸길이 24~33m, 몸무게 최대 190t에 이른다. 190t을 성인 한 사람 평균 몸무게(70㎏)로 환산하면 2714명에 달한다. 영어명은 블루 러퀄(Blue Rorqual)이며 흰긴수염고래 또는 흰수염고래라고도 부른다.
대왕고래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그 수가 많았으나, 극심한 고래잡이로 멸종 위기에 놓였다. 전 세계적으로 1만마리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동해와 서해에 나타나기도 했지만 1944년 이후로 보고가 없다.
▲한동안 잊혀졌던 대왕고래가 국내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얼마 전 ‘자원 빈국 한국에서 석유와 가스가 펑펑 쏟아질 수 있다’는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이하 대왕고래)가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전격 공개됐기 때문이다. 대왕고래는 포항 영일만 앞바다 수심 2㎞ 심해에 140억 배럴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유·가스전을 찾는 탐사 프로젝트명이다.
정부는 동해 심해 가스전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철통 보안을 위해 석유·가스가 대량 매장됐을 가능성이 높은 가스전 후보지에 이 같은 이름을 붙였다.
▲그야말로 감짝 놀랄 뉴스였다. 대통령이 발표한 대로 실제 석유·가스가 존재한다면 우리도 중동처럼 산유국 반열에 오를 수 있어서다. 우리 국민이 석유 4년, 천연가스 29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추정된 매장량(140억 배럴)도 엄청났기에 기대감도 한층 커졌다.
이에 증시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석유·가스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한 거다. 한데 그 흥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큰일 낼 것 같던 관련주들의 열기가 급격히 식어 하락세로 돌아선 게다.
▲정부와 한국석유공사가 오는 12월부터 대왕고래를 포함한 동해 심해가스전 유망구조 중 한 곳을 골라 첫 탐사 시추에 나선다. 올해까지 들어갈 ‘착수비’ 성격의 재원 100여 억원도 마련됐다. 연말부터 대왕고래 사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향후 5년간 최소 5개의 시추공을 뚫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추공 1개에는 약 1000억원이 투입되며, 총 5000억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관건은 시추 예산 확보이다. 하지만 검증 부실 논란 속에 일부 자료가 돌연 비공개로 전환된 데다 야당의 자료 요구도 거부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와 공사가 자초한 가시밭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