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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Jul 21. 2024

일상 회복

김길웅, 칼럼니스트



반복되는 삶이 일상이다. 우리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같지 않은 삶이기를 원한다. 변화에의 욕구가 촘촘이 스민 말이 있다. ‘진일보, 일신우일신’. 늘 획일적으로 되풀이되는 단조한 삶은 마른 모래알갱이마냥 무미건조하다. 좀 촉촉해서 좋은 게 사람의 삶이다. 너무 메마르면 점도(粘度)가 떨어져 관계에 닿지 못한다. 신선도를 잃기 쉬운 일상은 대다수의 사람이 무료하게 여기지만, 누군가에겐 간절히 원해도 누릴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얼마 전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으로 누릴 수 있는 일상의 범위가 상당히 줄어듦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질곡과 엇비슷한 ‘집콕’이란 조어가 생겼다. 둘레로 위리안치보다 더 첩첩한 칩거였다. 얼마나 사람과의 만남이 그리웠으며, 이웃의 훈김과 상큼한 웃음이 그리웠었나. 사람을 집 안에 가둬 놓았던 팬데믹이란 말에 가슴 쓸어내리며 돌아가고 싶던 게 일상의 회복이었다.



일상이란 좌와기거로 항다반사다. 본래 평범한 것이라 조금도 특정되거나 특별하지 않다. 하던 대로 하고 꿈꾸고 그리워하고 만나고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선지 환호작약하거나 쾌재를 부르짖지 않는다. 새로 시작할 때의 설렘이 없고, 사람을 섬뜩하게 하는 놀라움이나 충격도 없다. 혹여 작은 변화가 있다면, 초록이 잦아들면서 만산홍엽으로 치장하는 단풍의 한때 같은 짧은 시절 인연이 있을 뿐이다. 단풍 든 산은 이내 눈 덮인 설산(雪山)으로 이어지니, 사계절의 한 맥락을 이루며 일상의 범주를 크게 이탈한 것이 아니다.



어영부영 코로나에 부대낄 무렵, 파킨슨과 뇌경색, 두 개의 병을 품고 사는 포병객 신세가 됐다. 우지끈 일상이 부러져 내렸다. 약물치료를 하면서 병을 다독여 추스르고 있다. 않던 병치레에 몰두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비일상이다. 애초 일방적 동거로 시작한 병이다. 느닷없이 언어장애가 오고 머릿속이 캄캄해오면 삶이라는 일상의 밑동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여든의 나잇값을 하는지 당혹지 않고 녀석들 치다꺼리를 해내고 있으니 다행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새 한집살이하고 있으니,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해 놓고 무간히 지내고 있다. 객식구라고 함부로 냉대하거나 괄시할 수 없는 게 사람의 본심이고 정리가 아닌가. 가까이서 보듬다 보니 눈도 맞추게 되는가.



일상이 파괴되더라도 부둥켜안아야 할 게 글쓰기다. 시와 수필, 둘에서 도무지 떠날 수 없다. 글쓰기 곧 내 삶이기 때문이다. 낮엔 괜히 고단하다. 경험칙이 나를 인도하는 게 아닌가. 일찍 눈을 붙여 새벽 세 시에 깨어난다. 새벽은 새로 비롯하는 맑은 시간이다. 놓칠세라 길겐 세 시간, 글을 쓴다. 구상은 낮에, 쓰기는 새벽. 글을 써선지 안에 머무는 낯선 객을 부여안고 신음하지는 않는다. 이 글도 그렇게 몸과의 협상에서 성사된 결과물이다. 설령 체념에서 나온 것일지언정 하등 상관없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기므로 쓴다. 즐겁다. 삶 속의 발견인가. 새벽이 이렇게 겸손한 건지 전엔 몰랐었다.



글쓰기가 힐링으로 이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어도 행운이다. 무너졌던 일상을 회복하고 있어,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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