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분노(憤怒)는 분할 분(憤)과 성낼 노(怒)로 이뤄진 한자어다. ‘분개해 몹시 성을 내거나 그렇게 내는 성’을 이른다. 사전적 정의다. 심리학적으론 자신의 욕구 실현이 저지당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당했을 때, 그에 저항하기 위해 생기는 부정적인 정서 상태를 뜻한다.
분노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침해당하거나 위협을 당하는 등 여러 불합리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생후 3개월 무렵부터 시작돼 유아기 땐 울던지, 몸을 뒤집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자신의 요구가 저지되는 것에 뚜렷한 분노가 많아진다.
▲분노는 인간이 가진 원초적이고 강렬한 감정 중 하나다. 누구나 마음속 한구석에 한 조각 정도의 분노를 두고 있다. 우리 일상에서 분노는 흔한 감정이지만 해소하지 못하면 증오로 연결되는 경우가 적잖다. 그러면 그 강도 때문에 통제하기 쉽지 않아 악(惡)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종교에선 분노를 삼가고 스스로 잘 다스리거나 최대한 줄일 것을 설교한다.
자칫 본인은 물론 주변까지 파멸로 이끌 수 있어서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홧김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소위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는 이유인 듯싶다.
▲허나 분노는 항상 나쁜 것만 아니다. 실제로 그것은 정의롭고 매우 유용할 수 있다. 어떤 일이 옳지 못하다고 느꼈을 때 표출하는 분노다. 불의에 대항하거나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는 분노는 의로움을 지향하는 한 정당하다.
이에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에서 “정의는 그 안에 분노를 지닌다.
정의에서 나오는 분노는 진보의 한 요소가 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프랑스대혁명, 러시아혁명, 신해혁명, 4ㆍ19혁명 등이 거기에 해당한다.
▲‘2024 파리올림픽’이 끝났지만 국내 체육계엔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발단은 28년 만에 배드민턴 여자단식 금메달을 안겼던 안세영의 ‘작심 발언’이다.
그는 금메달을 목에 건 직후부터 회견 등을 통해 부상 관리 및 지원, 독점 후원, 부당한 관행 등 협회의 제반 문제들을 낱낱이 꼬집었다.
안세영은 그러면서 “목표를 잡고 꿈을 이루기까지 원동력은 분노였다”고 토해냈다. 그의 비판은 뜨거운 공감과 울림을 전한다. 7년의 기다림 끝에 터뜨린 분노였기에 더 그러하다. 배드민턴계 등 체육계 전반의 악습을 청소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