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어젯밤 올해 처음으로 에어컨을 끈 채 창문을 열고 잤다. 백로가 코 앞이라 그런가, 참으로 그칠 줄 모르는 맹렬한 더위도 숨구멍이 난 모양이다.
지난 장마부터 심상치 않은 날씨의 연속이었다. 햇빛 보기가 힘든 지루한 장마로 채소는 물론이고 꽃들이 녹아버렸다. 장마가 끝이 나자, 햇빛을 보니 좋다는 반응도 잠시, 숨 막히는 습한 더위로 견딜 수 없는 날들이 연속이었다.
온 세상 곳곳에서 재해로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이런 상황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중대한 위기에 직면한 지구촌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입을 열지만, 지구촌 어디서도 온난화를 막기 위한 시원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또한 국내외에서 들려오는 갈등과 전쟁에 대한 소식은 모두가 극으로만 치닫는 듯하다.
어디든 쉼표가 너무나 절박한 상황이다. 모든 걸 잃고 나서야 멈출 것인지. 그런 무모함이 도무지 무얼 위함인지 누구를 위함인지 묻고 또 묻고 싶다.
더위도 힘든데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우리의 삶을 더 짓누르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콧속을 통해 폐부까지 깊숙이 들이마시며 몸속에 갇혀 있던 온갖 불순물을 내보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어느 곳에서라도 그런 시원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오늘도 일상을 살아본다.
얼마 전 코로나 감염으로 격리 생활을 하다 보니 일상을 잠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일상에서 하던 일을 멈춘 그 시간에, 밀어뒀던 책을 읽으며 모처럼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오롯한 시간이었다.
직진하던 내 삶에 작가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에 잠겨보며 비로소 나에게 주어진 쉼표의 시간임을 알게 됐다. 궤도를 점검하며 수정도 하고, 가고 싶은 길이 어디인지 생각하는 참 귀한 선물을 받은 셈이다. 책을 읽어서 이로운 점을 말하라 하면 책으로 엮어도 될 만큼 많을 것이다. 사람마다 작용하는 효능이 다양해서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생각의 여유를 가져다주는 효능은 누구든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면서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생각이 곧 삶으로 이어지기에 무얼 생각하는지, 혹은 정말 생각 없이 그냥 살아가고는 있지 않은지 돌아보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쉼표, 직진에서 잠시 쉴 수 있는 시간. 습관만 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가던 길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도, 길옆에 핀 꽃을 잠시 쳐다봄도 잠깐 멈춤의 시간이다. 잠깐이지만 그 바라봄이 사로잡혀 있는 삶에 작은 여백을 만들어 준다. 그 여백으로 인해 궤도 수정도 되고 또 새로움에 직면하게 되는 용기도 채울 수도 있다.
오늘도 파란 하늘이다. 가을이 오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무더위도 끝이 보이듯이 모든 것은 끝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