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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Sep 02. 2024

아내는 무명의 셰프

김길웅, 칼럼니스트



늘 군소리 않고 먹는 버릇이 배어 있다. 등짝에 붙은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었지 맛은 버금이었다. 빈배를 달랬던 시절 얘기다. 소년에게 남는 건 내성(耐性)이었다. 초년 고생은 돈을 줘도 못 산단다. 배고픔을 참거나 조악한 허드렛 것을 먹어 때우는 것은 지금도 어지간한 수준을 넘어선다.



몇 날 며칠을 두고 무슨 생각에 몰두하는 눈치더니 종재기에 새로 만든 반찬을 떠놓고선 먹어보란다. 늙어 오그라든 마당에 아내가 일 하나를 저질렀다. 먹어본 적이 없는 반찬을 떠놓는 게 아닌가. 가만 나를 살피더니. 설명을 늘어 놓기 시작이다.



“별다른 레시피는 아니고요. 가짓수가 조금 많아요. 당근, 양파, 단호박, 버섯, 파프리카, 닭다리살, 감자, 토마토, 가지, 양배추, 이런 것들 일정량을 섞어 끓인 다음 마지막으로 카레를 넣어 마무리한 거예요.”라 하지 않는가. 소금 따위는 일절 넣지 않는단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아내가 주방에서 고민하는 사람처럼 서성이던 이유를 얼추 짐작하겠다. ‘허, 이 사람이 어떤 음식을 만든다는 것인고….’ 은근히 기대가 된다.



“이거 한번 맛보세요. 맛이 당신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대뜸 입에 두어 번을 떠 넣었다. 이게 무슨 맛인가. 언뜻 메밀 범벅 한 덩이를 입에 넣은 것 같이 무맛이 아닌가. 한데 내 입안에서 새 음식에 대한 반응이 일어난 건가. 달콤 새콤한 맛, 무시 덤덤한 맛, 시큰하다 뜨거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아리송한 맛, 육고기의 느끼한 맛, 뚜렷이 이렇다 할 것이 없는데, 덜 식은 열기 속에서 제맛을 내노라 경합이라도 벌이는 것 같다.



식기를 기다리며 맛을 보았다. 조금 전 뜨거웠을 때하고는 달랐다. 맛이 완성되고 있었다. 당근이 씹히면 당근의 단맛, 감자를 씹을 때는 입에 달라붙는 맛, 버섯과 가지, 파프리카는 그것들대로 여럿과 섞이면서 별스러운 맛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이를테면 토마토는 이미 자기의 맛을 잃고 있었다. 본래의 맛을 잃은 대신 독특한 맛으로 변용(變容)된 것 같았다.



맛의 조합, 맛의 창출이다. 맛이 이렇게 변할 수 있나. 입맛에 딱이다. ”햐, 이거 따봉이네. 열 가지 넘게 섞은 이유가 있었네. 크고 작게, 길고 짧게 썰어 넣느라 당신 어깨가 무너졌겠다.“



젊을 때부터 유별나게 육식을 좋아하는 내게 공대해 온 아내다. 늙어서라도 골고루 섭취하게 한다는 아내의 섬세한 배려를 이제 알겠다. 절로 고개가 수그러든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다 보면 정이 드는지 둘 사이가 나날이 여여하다. 이왕 공들여 만든 것이니 내가 오래 먹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아내에게 왜 없을 것인가. 삼시 세끼 시중이 어디 녹록한 노릇인가.



말하잖아도 눈빛 하나로 서로 간에 마음을 읽는다. 아내의 반찬을 먹기 시작한 지 넉 달이 지났는데도 질리지 않으니 별일이다. 나를 잘 먹인다고 오랜 궁리 끝에 만들어낸 음식이다. 이게 먹고 싶어 시장기가 오는 것 같은 요즘이다.



아내가 하지 않던 음식 하날 만들어냈다. 늘그막에 내외가 깊은 산속에 숨어 핀 꽃 하나를 발견한 것 아닐까.



이름은 없다. 아내는 ‘무명의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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