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기 편집국 부국장 겸 서귀포지사장
농사를 짓겠다며 10년 전 퇴사한 A선배와 최근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예전보다 눈에 띌 정도로 살이 빠진 그와 회사 이야기, 전 직장 동료들의 근황,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돌리다 보니 어느새 흥건히 취했다.
급기야 화제는 ‘농사’로 돌아섰다.
50대 초반 부모가 물려준 과수원에서 농사를 짓겠다며 사표를 던지고 귀향한 선배는 10년 차 농부다.
농사 이야기가 나오자 A의 눈빛이 달라졌다.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거의 매일 만감류를 심은 시설 하우스에서 보내고 있다는 그는 “남들이 하는 만큼 적당히 비료 주고 농약을 치며 시간을 보내면 결코 돈을 벌 수 없더라”고 했다.
착오에 착오를 거듭하면서 농사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았단다.
그러면서 “처음 전정하고 농약을 칠 때는 눈앞이 캄캄하더라. 차근차근 배우다 보니 지금은 농사일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A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작물에 애정을 쏟다 보면 땀 흘린 만큼 보상이 뒤따른다”며 자신만의 ‘농사 철학’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냈다.
식사 자리에는 정년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를 얻은 B선배도 있었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땅이 없는 두 사람을 앞에 두고 농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내는 A가 얄미워질 찰나 아차 싶었다.
자신의 근황을 묻는 후배의 질문에 농사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순간 자괴감이 들었다.
“국민 대다수는 직장에서 정년을 맞더라도 노후 생활을 위해 또 다른 직장을 얻어야 한다”며 화제를 돌렸다.
옆자리에 있던 B는 직장을 나오고 보니 세상은 전쟁터와 같았다고 했다. 재취업에 성공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며 미리미리 퇴직 후의 삶을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을 지금의 59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법정 정년(60세)과 국민연금 수령 연령(63세)에 차이가 있어 직장인이 정년을 채워 퇴직해도 연금을 받으려면 3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수급 개시 연령은 2028년 64세, 2033년 65세로 조정이 예고돼 있다.
정부 계획대로 시행되면 필자는 65세가 돼야 연금을 받을 수 있다.
회사에 다니면서 60대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직장이 없더라도 ‘쥐꼬리만한 연금’을 받기 위해 만 4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노후의 삶을 단순히 ‘돈’으로만 결부시켜서도 안 된다.
아무리 재산이 많더라도 ‘일’을 놓으면 삶의 균형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재산이 많다고 1년 365일 집안에서 빈둥거리며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주변을 돌아보면 모아놓은 재산이 있어도 퇴직 후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거나 시간제로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선배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온 결론은 농사를 짓거나 회사 경비원, 편의점 직원, 일용직 근로자 등 직종 구분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아무리 못해도 70대까지 일할 수 있는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