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 칼럼니스트
꽃 지고 난 자리로 열매 맺는다. 가을 갈무리는 넉넉하고 옹골차다. 허한 자락을 수확의 풍요로 채우는 계절, 가을은 언제나 충실하다. 들뜬 서정 뒤, 숨 고르기에 들어간 수필의 결말 문단 같다. 아침 기운이 쇄락하다. 산산한 바람에 머릿속이 뻥 뚫린다. 새벽이 지났는데도 실솔의 울음소리 청랑해 분위기 속으로 뜨고 가라앉는다.
무더위에 부대끼며 목마르게 기다려 온 가을이다. 지고 맺는 사상(事象)을 소재로 끌어안으면 내 문학이 걸쭉하고 비옥해질지도 모른다. 시를 읊듯 매끄럽게, 지나는 계절을 내 운율 속으로 붙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들과 만남과 헤어짐 뒤의 가지런한 융합의 질서는 얼마나 찬연한 것인가. 며칠 뒤, 산야엔 단풍으로 지천, 현란한 스펙트럼의 파장을 몸에 두르고 머리에 이게 된다.
잠시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의 단조한 일상에서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인다. 걸어 오를 몇 마장 밖 산사거나 아득히 보이는 작은 섬이거나. 며칠 동안 일체의 관계에서 떠나 나를 돌아보는 진지한 성찰의 시간 속에 있고 싶다. 누가 자칫 나더러 오두방정 떤다 해도 상관없다. 옥상에 오른다. 산을 바라보고 바다를 굽어본다. 가을이어서인가. 산의 침묵, 유여한 바다의 율동이 동과 정으로 조화롭다. 그들은 천년을 이어 온 존재의 무게로 하늘을 이고 느긋할 뿐이다. 항용 그렇듯, 오늘도 여상하므로 장엄하다. 바다 쪽으로 누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읍내 사람들은 언제 봐도 밝고 순박하다. 도시에 살다 온 나는 반거들충이, 평생 살아도 벌충하지 못할 일이다. 자성할 일은 바로 눈앞에도 있었다.
다소곳이 가을 아침 앞으로 다가앉는다. 너무 가까우면 보이지 않는다는데, 오늘은 다르다. 나를 돌아본다. 표정을 보고 숨소리를 듣고 굼뜬 걸음걸이에 눈 맞추고 내밀하게 틀고 앉은 마음자리를 들여다 본다.
표정은 덜 걷힌 그늘로 게슴츠레하고 숨소리는 촐랑대는 심박 따라 가쁘고 걸음은 뒤뚱거리고 마음자리로 솟는 높은 이 파고…. 마음자리에 이는 물결을 추슬러야 하는데, 그것 참 얄궂다. 여직 버리지 못하고 요동치는 욕심의 물결이라니. 공연히 떠나려 할 게 아니다. 나이의 무게로 헤아리고자 한다면, 마음이 깨어 있어야 한다. 나이는 쉬이 나대지 않게 무거운 것이다. 이제 무얼 새로 시작하려나. 무위(無爲), 이냥 이대로가 좋은 것인데….
요즘 들어 글을 쓰려면 소재의 빈곤에 허덕인다. 소재를 찾지 못하는 건 결핍이다. 결핍이 외려 글을 쓰게 한다. 자판을 두드리다 손이 멎으면 마당에 나가 나무에 말을 걸자.
무뎌 가는 의식부터 흔들어 깨워야지. 침체는 일탈로 나태는 해체로 다스려야 하는 것. 오래 전 읽다 시렁에 얹어 둔 책 몇 권 내려놓아 먼지를 털어야겠다. 설렁설렁 지나쳤던 글들이었다. 지금의 눈높이로 읽고 싶다.
가을 아침과 마주했다. 짧은 계절이다. 한동안 늦은 하오에 산그늘 오고, 그러고 나면 바로 겨울이다. 몸을 일으켜야지, 주저앉으면 겨울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