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대표·산림치유지도사/ 논설위원
엄청난 불덩이가 이글거린다. 솟구치고 넘치고 흐르다 다시 뒤엎는다. 용광로처럼 녹아내린다. 길게는 백여 만년 전에서 짧게는 수천 년 전의 일이다. 오름마다 불구멍을 만들었다.
모양도 다양하다. 어떤 것은 솥뚜껑처럼 뾰쪽하게 솟아있다. 어떤 것은 국그릇처럼 둥그렇게 파여 있다. 맷돌처럼 한쪽으로 터지거나 여기저기 갈라진 것도 있다. 땅바닥 밑으로 푹 꺼지거나 경사진 아래로 층층을 이루며 내려앉은 것도 있다.
오름 꼭대기에 만들어진 굼부리다. 제주도 방언이라 그런지 명칭도 다정다감하다. 지질 용어로는 화산체 분화구다. 용암이 분출했던 구멍이다. 오름을 만든 탯줄이다. 그 주변에 화산쇄설물이 쌓여 오름이 형성됐다.
굼부리가 따로 생겼다는 것은 화산 활동이 오름별로 이뤄졌다는 증거다. 오름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형성됐다. 화산 활동이 강하거나 약할수록 그 힘의 세기에 따라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그 유형을 네 가지로 나눈다. 원추형, 말굽형, 원형, 복합형이다.
원추형은 화산분출이 끝난 후 굳지 않은 용암알갱이들이 굼부리로 다시 흘러들어 삿갓처럼 형성됐다. 또는 유동성이 약하고 점성이 강한 용암이 주변으로 흘러내리지 못하고 화구에 그대로 남아 굳어진 경우다.
말굽형은 화산분출 용암이 한쪽으로 흘러넘쳐 크게 파이면서 오름 한쪽에 계곡을 이룬다. 오름 한 부분 등성이가 무너져 내린 것과 같다. 원형은 화산분출 과정에서 가스만 분출하거나 용암이 흘러내릴 여유 없이 화산 폭발력이 매우 강해 생긴 경우다. 복합형은 말굽형이나 원형 등의 화구가 2개 이상 혼합돼 형성된 경우다.
이를 유형별로 분류하면 368개 오름 가운데 봉우리가 있는 원추형은 102개다. 반면에 봉우리가 없는 굼부리 중에 말굽형이 174개로 가장 많다. 그리고 원형이 53개, 복합형이 39개다.
그런데 제주인들은 오래전부터 봉우리가 있는 오름을 숫메라고 했다. 봉우리가 없는 오름은 암메라고 했다. 말굽형, 원형, 복합형이 암메에 해당한다. 지금도 암메 또는 암메창으로 불렸던 오름 명칭이 있다. 특히 숫메와 암메의 비율은 102개와 266개로 1대2.6이다. 암메의 수가 그만큼 많다.
그런데 말굽형 굼부리에서는 특이한 현상을 보인다. 말굽형 굼부리 174개 가운데 동쪽으로 흘러내린 오름이 18개, 서쪽이 17개, 남쪽이 17개, 북쪽이 31개, 북동쪽이 29개, 북서쪽이 31개, 남동쪽이 12개, 남서쪽이 19개다. 이를 보면 동서남북 일정한 방향 없이 무질서하게 흐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 말굽형은 일정한 특징이 있다. 모산인 한라산을 정면으로 향해 터진 굼부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제주시 내에서 볼 때 한라산은 남쪽에 위치한다. 남쪽 정면을 향해 터진 제주시 내 굼부리 오름은 찾아보기 힘들다. 남쪽의 반대 방향인 북쪽, 또는 북동이나 북서 방향으로 터졌다. 한라산 정면을 기준으로 할 때 조금이라도 방향을 비틀었다. 서귀포시는 한라산이 북쪽에 있기에 이의 반대 방향인 남쪽으로 터졌다.
이처럼 백록담을 중심으로 둘러가면서 사방팔방 정면방향이 다르기에 그에 따른 터진 굼부리 방향도 해당 위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어쩌면 용암분출이 경사도를 따라 고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내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는 결국 한라산 정면을 향해 다리 벌려 앉지 않은 오름의 몸가짐이다. 어머니 한라산에 대한 자식 오름으로서의 예이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굼부리치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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