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인턴생활을 하면서 맞은 어느 주말이었다. 도쿄에 특별히 아는 사람이 없다보니 주말은 조금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긴자에 유명한 함박스테이크 맛집이 있다고 해서 혼자 외출을 했다. 긴자는 토요일 낮에 차도에 차가 못 다니도록 막아 놓고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게 개방해놓는다. 차도를 자유롭게 걷고 있다는 즐거움에 한참을 걸으며 구경하다가 함박스테이크집에 도착했다. 기대를 충족할만큼 함박스테이크는 정말 맛있었지만 어디든 혼밥 먹으러 잘 다니는 지금과 달리 혼밥이 매우 어색했던 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말이라 손님도 꽤 있고 바로 옆테이블에선 맥주를 마시며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던 터라 편하게 전화로 친구랑 얘기하면서 밥을 먹는데, 점원이 나에게 와서 주의를 주었다.
"죄송하지만, 전화통화는 밖에서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름 목소리 볼륨에 신경 쓰면서 얘기하고 있던 나는 너무 억울했다.
"옆테이블에서 저렇게 시끄럽게 얘기하고 있는데, 제가 작은 목소리로 통화하는 건 안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러자, 점원이 조금 곤란해하면서 옆테이블의 할아버지 쪽을 힐끔 보는 것이 아닌가.
그 할아버지도 혼자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할아버지가 점원에게 나에 대해 컴플레인을 한 모양이었다.
"저 할아버지가 저한테 시끄럽다고 하신 건가요?"
할아버지가 내 얘길 듣더니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누가 식당에서 통화를 그렇게 하나! 일본에서는 지켜야 할 예의가 있어! 그럴거면 너네 나라로 돌아가!!"
일본에서 항상 친절한 사람들만 보다가 혐한레파토리에서만 듣던 '너네 나라로 돌아가'를 듣자 나도 욱하고 말았다. 흥분해서 뭐라고 말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큰 소리로 시끄럽게 얘기한 것도 아닌데, 여럿이서 온 사람은 크게 떠들어도 되고 혼자 온 사람은 조용히 밥만 먹어야 하는 법이 어딨습니까?!!"
"일본사람들 다 친절한데,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일본이 욕먹는 거예요!!"
대충 이런 얘기를 했던 거 같은데, 할아버지가 큰 목소리로 계속 면박을 주니까 결국 나는 울음이 터져서 자리를 떠났다. 계산하고 가게를 나와 울음을 추스리고 있었더니 점원이 따라나와서 위로해주었다.
일본에서는 보통 식당에서 전화를 하지 않지만, 저 할아버지가 많이 예민하게 구는 거 같다고 너무 상처받지 말라며..
그래, 뭐 일본에 좀 더 오래 살다보니 일본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식당이나 대중교통에서 통화를 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 귀갓길에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전화가 오면 어찌나 눈치가 보이는지.. 그래도 그 때는 일본에 온 지 한 달도 안 되었을 때라 너무 상처였던 거 같다.
내가 삿포로 호텔에서 일하고 있던 시절, 한국에서는 평창올림픽이 열리고 있었다.
근무 중에 갑자기 일본인 남자동료가 무슨 맥락이랄 것도 없이 따져 물었다.
"한국은 대체 왜 그러는거야?"
"한국은 왜 일본 딸기를 훔쳐가서 자기들것처럼 파는거야?"
나는 당최 무슨 말을 하는 건지를 알 수 없었다.
앞뒤 없이 공격을 당한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집에 TV는 따로 들이지 않아서 내가 보는 영상이라고는 노트북으로 보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정도였다. 그래서 한국에서 누가 메달을 딴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그때 일본에서는 한국이 일본딸기를 훔쳐간 이야기로 혐한뉴스가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일본 여자 컬링팀이 쉬는 시간에 한국딸기를 간식으로 먹으며 한국딸기가 너무 맛있다고 얘기한 것이 큰 이슈가 되었는데, 이것이 일본의 자존심을 긁은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왜 일본선수가 일본딸기가 아니라 한국딸기를 홍보해주고 있냐며 발끈했고, 그 컬링팀에게 일본 딸기를 대량으로 보냈다는 후문이다. 일본에 돌아가서도 전농에 초대되어 일본딸기 식고문을 당하기도 했다고..(웃음) 올림픽 경기에서는 한국과 일본팀이 결승에 올라가 페어플레이를 하고 이긴 팀을 축하해주는 훈훈한 모습이 방송됐었는데, 매스미디어에서는......(절레절레)
아무튼 나는 한국이 일본의 딸기를 훔쳤다는 말의 진위 여부를 알기 위해 검색을 해보았는데, 그건 일부 사실이긴 했다. 2000년때 초반까지 한국농가에서 키우는 딸기는 90%이상이 일본에서 개발한 품종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훔쳤다'는 말을 인정해야 하는 과정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한일간에 로열티 협상을 하여 연간 30억원이 넘는 로열티를 지불했다고.. 그리고 그 비싼 로열티에 딸기농가의 부담이 너무 커지자 한국에서도 국산품종 개발에 많은 투자와 노력이 이어졌고, 현재는 오히려 한국에서 개발한 설향 등의 품종이 더 맛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로열티를 지불한 것과, 현재는 국산으로 품종을 개발에 성공했다는 내용은 쏙 빼고, '한국이 일본의 딸기를 훔쳐 자기들 것처럼 팔고 있다'라고 부풀려 혐한 뉴스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저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한국인 노동자에게까지 나비효과가..
오키나와 호텔에서 근무하면서 살게 된 집 바로 옆 건물에는 겉바속촉의 치킨가라아게를 메인으로 팔고 있는 "파리파리"라는 이름의 이자카야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점장인 오사무상은 심야식당의 주인처럼, 혼자 오는 손님들 한 명 한 명 말을 걸어주고, 다른 혼자 온 손님들과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그 이자카야의 단골이 되어, 가면 갈수록 "파리파리팸"의 멤버가 되는 느낌이었달까. 타지생활이 외롭고 힘들 때면 부담없이 술 한 잔 하러 갈 수 있고, 퇴근 후에 밥 하기 싫으면 메뉴에 없는 메뉴도 만들어 달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술 한 잔 하러 간 어느날이었다. 단골멤버들 중 가죽제품 가게를 운영하는 아저씨가 한 분 있는데, 온화한 인상과 따뜻한 말투를 가진 분이어서 평소에 인자하다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대뜸 나에게 이렇게 물어왔다.
한국은 도대체 언제까지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물고 넘어지는거야? 일본 정부에서 이미 사과도 했고 배상도 했는데.
그래서 내가 "사과하고 그 입장을 계속 고수하는 게 아니라, 정치인들이 말을 계속 바꾸니까요. 배상도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직접 한 게 아니잖아요."라고 얘기했더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럭 화를 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갑자기 큰 소리로 화를 내는 바람에 그 이자카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가족같이 느껴지던 사람들이 갑자기 한없이 멀게 느껴졌다. 그리고 일본사람으로 가득한 이자카야에서 한국사람이 나뿐인 상황에 나를 몰아붙이던 그 아저씨의 모습이 너무 비겁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아무리 일본이 독도를 지네 땅이라고 우긴다고 해도, 한국사람으로만 가득찬 곳에서 낯선 이방인으로 온 일본사람에게 독도가 어디 땅이라고 생각하냐고 묻진 않을 것이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그 단골 이자카야에 가지 않았다.
그러다 영업 시간 전에 오픈 준비를 하고 있던 오사무상과 마주쳤다.
"보용상, 다이죠-부? 심빠이시따요." 보용상, 괜찮아? 많이 걱정했어.
평소에도 많이 챙겨주던 오사무상이 그 상황에 처했던 나를 보고 걱정했다는 말을 듣고 조금 마음이 풀어졌던 것 같다. 일본어를 하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너무 많은 친절을 베푸는 멤버들이 많았기에 그 후 다시 이자카야에 출입하게 되었지만, 그 아저씨는 딱히 나에게 사과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딱히 나를 불편하게 하지도 않았다. 그저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냈지만 마음은 굳게 닫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