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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와의 전쟁2

2차 이름모를 벌레가 집을 점령해버렸다(오키나와 신축사기)

by Callia

삿포로에서 4년을 일한 뒤, 예전부터 내가 희망했었던 오키나와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회사 인사부가 일을 참 잘 한다 싶은 것이, 나는 항상 언제든 한국으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만두려고 생각할 때마다 정직원으로 전환시켜주고(계약직과 달리 연 2회 상여금이 나와서 연봉 차이가 크다.) 이번에는 내가 희망하는 근무지로 파견도 시켜준 것이다. 호텔만 본다면 당연히 삿포로 호텔이 고급호텔이지만, 나는 전부터 오키나와에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에 와서 내가 번 돈으로 처음 여행을 간 곳도 오키나와였고, 그 때 오키나와에서 느꼈던 이국적인 느낌(아메리칸빌리지와 살사파티)과 내 최애동물이 된 고래상어, 그리고 삿포로와 상반되는 따뜻한 날씨는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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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었던 나의 첫 여행(왼쪽부터 살사파티-아메리칸빌리지-고래상어)


복층 로망에서 트라우마로..


오키나와로의 이동이 한 달 뒤로 정해지는 바람에 집을 구할 시간이 매우 빠듯했다. 그래서 2박3일 연차를 내고 오키나와로 떠났다. 그리고 한 부동산을 통해 하루에 4곳 정도를 보러 갔었다.

보증금(2달치 월세) 포함, 한달에 월세 5만엔까지는 회사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에 월세 5만엔보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곳으로 찾고 있었는데, 그 예산에서 구할 수 있는 곳들 중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신축에 위치가 괜찮으면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평수가 너무 협소했다. 구축은 다른 곳들보다는 넓었지만 건물이 많이 낡고, 타타미방이라서 관리가 걱정이 되었다. 그중 유일하게 내 눈에 들어온 곳이 내가 살게된 신축 복층원룸이었는데, 월세도 6만엔이고 복층이어서 천장이 높고 탁 트인 느낌이었다. 빌트인 옷장과 신발장도 있고 복층이라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었다. 모노레일역부터 집까지도 탁 트인 길이어서 좋았다.

내가 계약한 신축복층원룸
위층은 침실로 쓰고, 아래층은 넓은 테이블을 두고 거실로 써야지~
빔프로젝터를 사서 위층 난간에 놓고 반대쪽 넓은 흰색 벽에 쏘면..?

1인 자취러들은 한 번쯤 꿈꾼다는 복층에 대한 로망이 눈 앞에 그려지고 있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1층이라서 오래 공실이었다는 점!

같은 건물 다른 집들은 다 찼는데, 여기만 3개월 정도 공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보았던 다른 집들과 다르게 바닥이 좀 더러웠다. 벌레도 좀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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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방상태

이 부분을 부동산중개인에게 지적하자, 공실인지 오래되서 하수구에서 벌레가 올라온 거 같다며 집주인에게 얘기해서 청소를 해놓겠다고 했다. 참고로 집주인은 개인이 아닌 1인가구 전용 건물을 지어 임대하는 건축관리회사였고, 입주청소는 내가 나갈 때 하고 가야하는 계약이었기 때문에 내가 들어가기 전에 그들이 집을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놓는 게 당연했다. 마음에 걸리는 건 그거 하나였던지라 다음날 그 건물을 관리하는 회사로 가계약을 하러 갔을 때도 청소와 벌레에 관해 물어봤는데, 청소는 당연히 해놓겠지만 벌레는 밖에서 들어올 수도 있고, 임차인이 어떻게 생활하냐에 따라 영향을 받는 부분이라 자기들에게 책임은 없다고 했다. 책임은 없다라.. 찝찝했지만 그 외의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약간은 찝찝한 상태에서 계약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같은 호텔로 파견된 신입사원은 호텔에서 머물면서 천천히 집을 알아보더라. 나는 뭐가 그리 급했던건지.. (눈물)


그리고 이사당일! 이사차가 오기로 한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는데, 아니 이게 무슨..

청소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항의전화를 했더니 죄송하다면서 청소할 사람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도착한 건 유선청소기를 들고 온 여직원 1명..그냥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직원을 급한대로 보낸 듯 했다. 처음엔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그 여직원이 혼자 청소한다는 걸 가만히 보고 있었지만 짐도 곧 올 것이고 그 여직원이 좀 안되 보이기도 해서 나중엔 같이 청소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보게 된 게 아주 작은 검은 벌레였는데..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진 않겠지만 혐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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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알고 있는 종류의 벌레는 아니었다. 하수구에서 올라온 것으로 추정되어 일단 보이는 건 물티슈로 닦아서 버리고 배수구청소를 한 번 했다. 청소를 하러 왔던 여직원을 보내고, 일단 짐들을 집안에 들이고 정리를 했는데, 문제는 이 작은 검은 벌레들이 자꾸 나온다는 거였다.



벌레는 게으름뱅이도 청소를 하게 한다


집주인에게 항의했지만 모르쇠로 나왔고 나는 다시 벌레와의 전쟁을 시작해야 했다. 걸레빠는 걸 정말 귀찮아했던 나는 대걸레와 일회용 물티슈를 구입하여 매일 저녁마다 방을 쓸고 닦았다. 배수구에도 매일 락스를 뿌렸다. 나는 오키나와로 전근을 오고 난 이후로는 보통 오후 12시에 출근하여 밤 9시에 퇴근하였는데, 일하면서 집에 가기 싫다고 생각했던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집에 가도 청소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아무리 청소해도 벌레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서 다음날이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그래서 정말 구석구석까지 벌레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벌레는 사람을 무는 벌레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워낙 작아서 생김새를 정확히 알 수 없다보니 확실하진 않지만, 내가 인터넷지식을 빌려 추정하기로는 이 벌레는 해충은 아니지만 해충의 먹이가 되는 벌레라서 방치하면 다른 해충이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제일 더운 6월에 오키나와로 전근을 와서 이 벌레를 완전히 전멸시키기까지는 한 3개월 정도가 걸린 것 같다. 날씨가 좀 선선해지는 가을쯤이었다. 더이상 청소를 해도 그 벌레가 나오지 않았다. 중간에 엄마도 오키나와에 방문했어서 내가 출근한동안 청소를 해주어 정말 많은 힘이 되었다. 아니었으면 정말 스트레스지수가 너무 높아서 노이로제로 쓰러졌을 것 같다.

그렇게 자기 전 청소는 나의 루틴이 되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신이 나를 가르치기 위해 "혐오"라는 방법을 쓰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어떤 강력한 동기가 없으면 바뀌지 않는다. 혐오는 게으름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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