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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츠윌리엄 다아시 Jan 23. 2024

퓌센

독일

Alpsee - 호엔슈반가우 성 - 노이슈반슈타인 성 - Marienbrücke

 그동안 뮌헨 생활에 적응하느라 여행을 가지 않다가, 열흘 만에 퓌센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퓌센은 뮌헨에서 기차 타고 2시간 30분 정도 가야 하는 결코 가깝지 않은 마을이었다. 어제 친구들이랑 저녁을 먹으면서, 거기 가서 먹을 점심을 해오자고 약속했기 때문에 7시에 일어났다. 바로 SM의 집으로 가서 같이 베이컨말이주먹밥을 만들었다. 당근과 애호박을 다진 뒤, 밥이랑 같이 볶았다. 이후 손으로 작게 뭉쳐 거기다가 베이컨을 말았다. 너무 크게 뭉쳐 터져 버린 주먹밥도 여럿 있었다. 그렇게 주먹밥으로 플라스틱 통들을 배낭에 담고, 뮌헨 중앙역으로 갔다.

 역 승강장에서 JH과 BK를 만났다. 우연히 우리와 마찬가지로 TUM 한국인 교환학생인 여자 4분도 만났는데, 우연인지 이분들도 우리랑 목적지가 같았다. 친화력이 좋은 JH과 BG는 기차에서 이분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지면 불편해서 따로 다니게 되었다. 퓌센 역에 도착 후, 버스를 타고 슈반가우로 갔다. 어느새 정오가 다 되어서, 성들에 가기 전에 Alpsee로 갔다. 깨끗하고 넓은 호수와 이에 비친 푸른 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참 물이 맑았고 살짝 초록빛도 났다. 호수물로 마음을 정화시킨 뒤, 호수 옆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었다. JH과 BK는 김치볶음밥을 해왔다. 음식이 식어서 살짝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둘 다 매우 맛있었다. 특히 베이컨말이주먹밥은, 내가 만들어서 그런가 베이컨이라는 만능 재료를 써서 그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뭉개지지 않고 흐트러진 구름이 묘하게 어울렸다 | 베이컨말이주먹밥과 김치볶음밥

 배를 평화롭게 채운 후, 정리하고 호엔슈반가우 성을 보러 갔다. 이 성은 노이슈반슈타인 성보다 낮게 위치해 있을 뿐, 그래도 높은 언덕 위에 있어서 멀리서도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외벽이 온통 노란색으로 되어 있어서 푸른 나무들 사이로 잘 튀기도 했다. 한적한 숲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노란 성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밝은 색깔이 위엄을 주지는 않았지만,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성 내부로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해서, 정원만 훑어보고 나와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갔다. 이곳은 호엔슈반가우 성과 달리 관광객들이 많았다. 성 옆에 있는 전망대—모습은 전망대이지만 성보다 지대가 낮았다—에 도착해서 잠시 쉬며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태양이 밝아서 그런가 가까이서 보니 완전히 하얗게 보이지 않았다. 물론 시드시 오페라 하우스처럼 누렇게 더러워진 것은 아니었다. 놀랐던 점은, 성벽을 쌓아 올린 지반은 생각보다 낮았다. 적이 절대 오를 수 없을 만큼 지면과 수직으로 높게 벽을 세워 성을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성문 앞까지 가니 정말 높게 느껴졌다. 외벽이 온통 하얀색으로 단조롭지만 하지 않고, 중간중간 빨간색 벽돌도 이용하여 마을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주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예약을 해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어서 성문만 보고 돌아와, 이 성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러 갔다.

외벽이 연한 노란색으로 파스텔 톤을 띠고 있어 작은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 옆면은 온통 회색이라 밋밋하게 느껴졌다

 10분 정도 걸어가서 Marienbrücke에 도착했다. 사람 2명이 동시에 건널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좁았다. 한 줄로 서서 차례대로 걸어갔다. 한 발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다리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밑을 쳐다봤는데, 저 아래 작은 폭포가 연달아 흘러내리는 에메랄드 빛 계곡이 있었다. 다리에 점점 사람들이 많이 들어서니 다리가 무너지는 상상을 하게 되어 등골이 살짝 선득해졌다. 아래는 그만 보고 옆을 보니 아름다운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볼 수 있었다. 뻥 뚫린 밭을 배경으로 아래 성벽은 푸른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위로 다소곳이 하얀 성이 앉아 있었다. 우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독해 보이기도 했다. 신분이 매우 높아 오히려 고독하게 산다는 것이 모순적으로 다가왔다. 그깟 계급이 뭐라고, 저렇게까지 해서 외로이 살아야 할까? 다리를 건너 옆에 산도 조금 탔다. 최대한 높은 곳에 가서 보면 다르게 보일까 궁금해서 길이 없는 가파른 곳까지 올라갔다. 더 크게 보이긴 했지만 나무에 가려져 보여 괜히 사람들이 다리에 몰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면 수면 아래 바닥에 머리를 박을지 말지 상상도 해보았다 | 나무 사이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백조

 산에서 내려온 후 다시 퓌센으로 돌아왔다. 이제 퓌센 시내를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흥미로운 곳이 하나도 없었다. 대충 돌아보니 그저 작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딱히 오래 있을 이유가 없어서 기념품점에 조금 있다가, 계획보다 빠른 15시 23분 기차를 타고 뮌헨으로 돌아왔다. 중앙역 아시아 마트에 들른 후 사람들과 헤어지고, SM과 Zum Koreaner이라는 한식당에 가서 제육볶음과 육개장을 시켜 먹었다. 각각 겨우 7.9유로밖에 안 될 정도로 뮌헨 식당들 중에서는 가장 싼 축에 속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두 음식 다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특히 육개장은 밍밍하고 깊이가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그나마 제육볶음은 학식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여유가 생기면 제육볶음을 포함한 여러 한식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퓌센 여행은 덩그러니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전부이었어서 개인적으로 이동 시간이 아까웠다. 그렇지만 같이 TUM으로 온 교환학생 친구들과 같이 호수에서 피크닉도 하고 대화도 하며 친해진 것이 너무 좋았다. 저 성은 영원히 외롭게 남아있을 거라는 사실과는 대조적으로, 내게는 타지에서도 즐겁게 어울릴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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