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Königssee - St. Bartholomew's Church
침대에 누워 책을 읽던 도중 SM에게 연락이 왔다. 학생회에서 교환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 홍보 메일이 왔는데, 같이 참여하지 않겠냐고. 주말에 아무 계획이 없어 신청하기로 했다. 아쉽게도 SM은 Paypal 결제 오류로 인해 신청에 실패해서 나만 혼자 가게 되었다. 차라리 나 홀로 가는 여행이었으면 괜찮았겠지만,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들이랑 같이 다니게 되어 조금 걱정되었다. 영어로 대화할 생각을 하니 피곤해질 내 모습이 선히 그려졌다. 일대일로 대화하는 것은 체력 소모가 상당하고, 대화 그룹이 커지면 말을 꺼낼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어색하게 반응해야 해서 스트레스가 여간 많은 게 아니다. 그래서 가끔은 제발 내게 말을 걸지 말아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내가 신청한 행사지만 가기 매우 귀찮아졌다. 하지만 환불이 안 된다고 분명히 나와 있어서 하는 수 없이 참석하게 되었다.
베르히테스가덴은 뮌헨에서 꽤나 먼 곳에 있는 마을이다. 심지어 퓌센보다도 조금 더 멀다. 6시에 일어나서 시리얼로 아침을 때우고 나왔다. 가는 길에 VER를 만났다. 외국인이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살아 한국어가 유창하다. 겉모습을 보지 않고 말만 들으면 한국인이라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다. 그녀랑 대화—이 대화가 이날 한 마지막 한국어 대화였다—하며 중앙역으로 갔다. 서른 명 정도 되는 외국인들이 몰려 있어서 바로 집합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이리저리 어울리며 수다를 떨다가 기차가 도착해서 바로 탑승했다. 전원이 다 오지 않았음에도, 튜터들은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기차는 냉정하게 출발했다. 가는 기차에서는 싱가포르 여학생 옆에 앉게 되어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어느 학교에서 왔는지, 전공이 무엇인지, 언제 본국으로 돌아가는지 등등 처음 보는 학생들끼리 만나면 으레 하는 질문들을 주고받았다. 30분 정도 영어로 떠드니 확 피곤해졌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영어로 오래 대화하면서 생긴 뇌의 과부하가 더 주요한 원인이다. 다행히 그 친구도 피곤해졌는지, 서로 말을 멈추고 쪽잠을 잤다.
마을에 도착하기까지는 한 번 환승하며 총 3시간이 걸렸다. 벌써 정오가 다 되어가서, 마트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사 먹었다. 나는 바나나를 먹으며 한적한 마을을 둘러보았다. 날도 맑고 물도 맑았다. 사람도 별로 없고 높은 건물도 없었다. 하지만 대형 마트나 기차역 등 있을 건 다 있어 정말 살기 좋아 보였다. 20여 분 뒤, 버스를 타고 Königssee로 갔다. 이곳은 마을이 매우 작고 많은 건물이 목재로 만들어져 있었다. 산도 더 가까워서 나무가 더 우거져 보였다. 선착장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이 검은 나무로 되어 있어서 예뻤다.
왕복 티켓을 받은 뒤, 마흔 명쯤 수용할 수 있는 보트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했다. 우리 무리가 앉은 구역은 의자 구조가 매우 불편했다. 다 옆을 보고 있는 구조였는데, 특히 내가 앉은 의자는 창문을 바로 등지고 있어서 밖을 보려면 고개를 적어도 90도는 돌려야 했다. 경치는 매우 아름다웠다. 푸른 산들이 호수에 비치는 게 선히 보였다. 우리가 가는 길 양쪽으로 산과 절벽이 이어져 있어, 피오르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다가 중간에 보트가 멈춰 서더니, 가이드가 절벽을 보고 트럼펫을 불기 시작했다. 노래의 한 소절씩 끊어 불렀는데, 각 소절이 끝날 때마다 메아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낮은 지대에서 이렇게 선명한 메아리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다시 보트는 출발하여 중간 정박지, St. Bartholomew에서 멈추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내려 자유시간을 가졌다.
가장 먼저 간 곳은 멀리서부터 우리를 반겼던 성당이었다. 베이지색 외벽에 지붕은 동글동글 초코렛 마냥 갈색으로 되어 있어 초코렛 공장이면 좋겠다는 헛된 기대를 하게 했다. 내부는 궁전의 아기방 같이 작고 귀여웠다. 바로 옆에 Biergarten이 있었지만, 가격대가 비싸 숲 안쪽을 혼자 돌아다녔다. 숲 속 나무들은 무척 높았다. 물뿐만 아니라 공기도 무척 맑다는 것이 느껴졌다. 숲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서 얕은 호수 물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닥에 있는 돌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매우 깨끗했다. 그렇게 1시간 조금 넘게 마을을 돌아보다가 선착장으로 갔다.
귀가하는 시각은 자유였는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튜터와 같이 돌아갔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어쩌다 보니 중국인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총 7명이었는데, 그중 말이 많은 3명이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친해졌다. 그래서 기차도 그렇게 8명이서—나와 말 많은 3명이 한 테이블에, 나머지 조용한 4명이 옆 테이블에 앉았다—같이 탔다. 그들은 정말 한국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많았다. 나는 되물어볼 틈도 없을 만큼 대답하느라 바빴다. 여학생 1명은 아이돌과 드라마에 대해 질문을 많이 했는데, 나도 아는 것이 많이 없어 그녀가 만족할 만큼 공감해주지 못하였다. 남학생 1명은 축구에 관심이 많아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빅클럽에 가는 선수들이 많은 것을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자기네 나라는 왜 이렇게 축구를 못하는지 한탄했다. 한국어도 조금 알려주고, 반대로 학창 시절 무려 3년 동안이나 배운 중국어 실력도 뽐내면서 수다를 떨다 보니 금세 뮌헨에 도착했다. 다음 달에 베를린에서 하는 학교 행사에서 만나기로 하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집에 돌아오니 피로가 확 몰려왔다. 태어난 이래 영어를 가장 많이 쓴 하루였다. 정말이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한국어로 대화할 때와 달리 번역하는 과정이 끼어 있으니, 체력 소모가 배가되었다. 방에다 짐을 대충 던져 놓고 바로 라면을 끓였다. 더 칼칼하게 먹기 위해 파와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먹었다. 하루 동안 영어로 누적되었던 피로를 매운 고통이 날려 보냈다. 역시 라면이야말로 한국인의 만병통치약이다.
유럽에 온 이후, 아무 계획도 하지 않고 간 여행은 처음이었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베르히테스가덴은 소금광산과 히틀러 별장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소금광산이야 폴란드에서 가봤으니 관심이 없지만, 히틀러 별장은 가지 못해 살짝 아쉬웠다. 직접 계획해서 갔었으면 분명 이곳도 들러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따라다니는 여행은 보통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가보고 싶은 곳을 못 가는 것도 그렇지만, 수동적이다 보니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여행은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여행을 다닌 환경이 매우 특수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과 하루 종일 어울려 다니며 진이 다 빠진 기억을 어찌 잊을 수 있으리. 앞으로 굳이 이런 경험을 찾아서 다시 하지는 않겠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