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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츠윌리엄 다아시 Feb 10. 2024

레겐스부르크

독일

발할라 - 레겐스부르크 대성당 - Steinerne Brücke - Dreieinigkeitskirche

 목요일에 수업이 없어서 당일치기로 주변 소도시를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전 교환학생 단체톡방에다 같이 가자는 글을 올렸지만, 아무도 회신을 보내지 않아 혼자 가기로 했다. 여러 도시들 중 그리 멀지 않은 두 곳을 후보로 선정하였다; 아우크스부르크와 레겐스부르크. 그러나 둘 중 어느 도시를 갈지는 당일 아침까지도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두 도시로 가는 RE들이 수시로 있어서, 뮌헨 중앙역에 도착했을 때 바로 탈 수 있는 기차에 타기로 했다. 중앙역에 도착하니 5분 뒤에 레겐스부르크행 RE가 떠난다고 하길래, 레겐스부르크로 가게 되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날이 맑았다. 그래서 시내를 돌기 전, 시내에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발할라라는 곳에 다녀왔다. 버스에서 내린 후 고요한 숲 산책길을 걸어 나오니 높은 언덕에 하얀 신전 같은 건물이 한 채 있었다. 상상도로만 보던 아르테미스 신전이 떠올랐다. 대리석 계단을 걸어 올라가 건물에 들어가기 전 도나우 강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강 건너로 푸른 밭들이 펼쳐져 있었다. 4유로를 내고 발할라에 들어갔다. 뻥 뚫린 홀에 조각상들이 쭉 전시되어 있었다. 과거 바이에른 왕국의 왕의 전신상을 중심으로 수많은 흉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독일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내게는 그래서 '저 사람들이 누군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4유로는 도나우 강의 경치를 본 값으로 치고 내려가 시내로 가는 버스에 탔다.

 신전처럼 생긴 것과 다르게 안에는 인물들만 있어 아쉬웠다 | 밭이 선분들로 나누어진 것을 보고 '문명'의 농장 시설이 떠올랐다

 시내로 돌아오니 구름색이 회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가 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할 겸 레겐스부르크 대성당으로 갔다. 이런 작은 도시에 있는 성당치고는 매우 컸다. 들어가자마자 전방에 보이는 100여 개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시작으로 둘러보다 나왔다. 황급탑과 구 시청사, Porta Praetoria를 거쳐 Steinerne Brücke로 갔다. 건물들의 외벽은 감라스탄을 연상시킬 정도로 뚜렷하고 다양한 색깔로 칠해져 있었다. 다만 지붕은 여타 중부유럽 소도시들처럼 빨갛게 통일되어 있었다. 강가로 내려가서 그 밋밋한 돌다리를 감상하고 있으니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고 모자가 없는 후리스를 입고 왔기 때문에 그대로 비를 맞아야 했지만, 다행히 빗줄기가 세지는 않아서 맞을 만했다. 주황색 시계탑인 Schützenturm를 등지며 Steinerne Brücke를 건너 강북으로 갔다. 강 건너에서도 레겐스부르크 대성당의 높은 첨탑이 보였다. Walhallabahn이라고 예전에 운행했던 열차—토마스 같이 생긴 구식 열차—를 보고, 아코디언 연주를 들으며 강남으로 내려갔다.

한눈에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 건물이 들어온다 | 돌다리의 밋밋함을 주황색 시계탑과 주변 건물들이 없애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세지 식당인 Historische Wurstkuchl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으나, 자리가 꽉 찬 관계로 잠시 도나우 강과 시내를 더 둘러보기로 했다. 서쪽으로 가려던 찰나, 시계탑 아래에 젤라또 가게가 보였다. 갑자기 젤라또가 당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들어갔다. 작은 컵 하나를 사들고 나와 도나우 강가를 하염없이 걸었다. 다 먹은 후 시내로 들어가 Dreieinigkeitskirche에 갔다. 레겐스부르크 대성당도 사람이 적었는데, 이곳에는 단 한 명의 관광객도 없었다. 하얀 벽에 진한 갈색 목재로 모든 가구들이 있다 보니 고풍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2유로를 내고 전망대로 올라가 도시 전경을 감상했다. 탈린처럼 죄다 빨간 지붕들로 가득했지만, 레겐스부르크 대성당과 구 시청사의 시계탑만 우뚝 서있었다.

현대미술이랍시고 하얀 계단은 이 도시의 모든 성당에 다 있었다 | 공사 중인 레겐스부르크 대성당이 옥에 티다

 다시 Steinerne Brücke로 돌아와 드디어 Historische Wurstkuchl에 갔다. 다행히 딱 한 자리가 남았었다. 밀맥주 한 잔과 Bratwurst 6개를 주문했다—가격표를 보고 흠칫 놀랐다. 밀맥주가 먼저 나와 한 모금 마셔보았는데, 매우 실망스러웠다. 밀맥주 흉내를 내다 실패한 것인지 물을 탄 것인지 너무 밍밍했다. 밀의 부드러움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보리의 향도 세지 않았다. 곧바로 소세지도 나왔다. 대단한 소세지를 기대했지만,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폭삭 늙은 것인지, 비실비실한 Bratwurst 6개가 수북한 Sauerkraut 위에 올려져 있었다. 맛이야 당연히 있었다. 다만 14.4유로나 되는 돈을 주고 먹기에는 많이 아쉬웠다. 차라리 수퍼마켓에서 Bockwurst를 하나 사다 오븐에 구워 먹는 게 훨씬 더 맛있는데. 너무 시어서 소세지 없이 먹기 힘든 Sauerkraut만 남긴 채, 직원에게 "Stimmt so."라 말하며 20유로를 건네고 나왔다.

 처음 Steinerne Brücke로 왔던 길을 거꾸로 가 레겐스부르크 중앙역에 도착했다. 아직 16시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레겐스부르스에는 더이상 볼 것이 없었다. 2시간이 걸려 집에 돌아가니 배가 꺼졌다. 어김없이 라면을 끓이고 뮌헨의 '진짜' 밀맥주를 마셨다. '역시 밀맥주는 뮌헨이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하루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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