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꽃부리의 이야기 <2011년 6월 23일 >
글쟁이에게 소중한 친구 1호가 있다. 조물주가 누구에게나 무상으로 선물한
푸르른 자연이 바로 그것이다.
자연이란 캔버스에 그려진 초록의 무리들 어느 색이고 화합하면 싱그러움으로
금세 변하여 막혔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여름 친구이다.
봄인가 싶어 뜰에 앉으면 나무 가지마다 늘어나던 연둣빛 새싹 몽오리 터지고 터지는
소리 들리지 않으나 하룻밤 자고 나면 진 고동색 사이로 칠해지던 초록의 조화를
바라보며 보내던 봄은 벌써 가고 여름이다.
간간이 찾아오는 봄 비가 친구 해주면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잎새들이다.
내 보금자리 부근에는 벚나무, 전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이미 초록으로 너울너울
이 여름의 생명력을 과시하는 듯 바람 친구 따라 흔들흔들 상쾌하다.
한 해 가는 겨울이면 나목으로 사지를 죽 벌리고 풍파를 숨죽인 듯 견디다가 따
뜻한 봄바람 살랑이면 파릇파릇 무성해지는 생명력은 과연 어데서 오는 것일까.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순수하고 욕심 없는 이 자연 속에서 좀 더 편하게 살려고 만들어
내는 과학의 힘에 의해 순수를 감당하려 하다 그것에 치여 외로워한다.
좀 더 편하게 산다고 사람들은 만들지 못하는 맑은 공기를 더럽히기만 하는데
말 없고, 장소 가리지 않는 무심한 나무는 틈새만 나면 비집고 그 질긴 생명을
내리고 부지하여 산소를 만들어 내고 더럽게 한 공기를 원망도 없이 바보처럼
정화만 한다.
한도 끝도 없는 인간의 욕심을 보아주다, 당하다 , 화가 난 자연의 재해, 지진으로
화산으로 토네이더로 속수무책의 경고를 주지 않던가.
그렇게 저지르고 당하는 대 재앙 앞에 너무도 미약한 존재인 우리들, 자연 파괴는
과연 어디까지 가야 끝을 낼 것인가,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천만다행 아직까지는 메마르고 삭막한 대지에 초록의 빛을 주워 상쾌한 생기
돌게 하고 내뿜는 숨은 쾌적한 환경을 이루는 초록빛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자연이 준 귀하디 귀한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 없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그 빛마저 잃어 붉은 땅에 나무가, 물이 없어 구정물이나 다름없는 물을 먼 길을 걸어가
길어다 먹으며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메스미디어를 통해서 수 없이 접한다.
성스럽다고 느끼는 사랑의 결실인 생명을 달고 모여든 집단은 순리 자연한 집단의 힘이
도와주지 못하면 소멸되고 마는 무서운 자연의 힘 앞에 우리는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을 먼저 사랑해야 하는지 정답이 그곳에 있음을 소름 끼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대로를 닮아 가야 하고, 흉내 내야 하고, 우리 그렇게 지켜 가야 함을
말이 없는 자연은 근엄하게 우리를 꾸짖고 교육시키고 있다.
조물주가 선물한 본성을 점점 잃어가는 우리는 종교라는 스승을 모시고 그 순리에
가깝게 가기 위해 때 묻은 육신과 정신을 정화하기 위해 매달리고 기도하고
참회하지 않던가.
그러나 그 순수는 그리 쉽게 우리를 자기 옆에 앉히지 않아 슬프다.
나를 버리기 어려워하고, 또 어렵다.
그만큼 너나 나는 현대 사회의 물질문명에 너무나 때가 묻어 있다.
사람들은 소 집단의 집합체만 되어도 아웅다웅한다.
서로 드러나지 않는 것에는 나 몰라라 하고 한 그루의 멋지게 드러나는
정원수 되기만을 원하여 드러나는 곳에 핏대를 올리고 생활한다.
초록의 집합체를 이루어 공기를 정화해주고 싱그러운 생기를 인간에게
무상으로 선물하는 나무만도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집합체는 자연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운동에서도 점점 사라져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발을 해야 하고, 핵가족이 되어야 하고, 드러나서 빛이 나야 하고
삭막함 속에 우리 모두는 외로워하고 슬퍼하면서 눈치를 살피며 구렁텅이를 향해 가는 것이다.
숨통인 집합체의 화합에서 오는 안정, 자잘한 어려움은 묻히는 포근함, 큰 나무고 작은 나무도
땅도 바위도 물도 어우러지는 자연 집합체의 멋과 정화의 능력 속에 파 묻힐 곳이 점점
없어지는 이 크디큰 설움 어쩌란 말이냐.
어떤 사람이던 복 지은 자리만큼의 현장에서 존경받는 분을 보면 행복하다.
나무도 그렇다 어느 자리에 서 있던 우람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그늘을 만들어
쉬게 하고 보게 하는 나무를 보면 조심스러워서 몸가짐부터 자연스럽게 추스르게 된다.
왜냐하면 비록 말을 못 하는 나무라 해도, 그 모진 풍파를 거치며 우람하게 서 있는 신령한
아름다움은 시련을 거친 품격의 기운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시련과 아픈 시간을 견뎌내야 더 강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인간의 속성은 사람도
자연의 일부임을 어찌 부정하겠는가.
양심이라는 본심을 가진 우리는 거기서 보고 배우며 성장하며 그 기운을 참으로
무섭게 여겨 몸과 마음을 저절로 조심하며 그런 신령한 나무 앞에서
옛 어른들은 치성을 드리지 않았던가.
어렵고 힘든 비바람과 추위와 더위를 묵묵히 건져 내고 또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어느 해인가 1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를 대한 적이 있다.
정말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하게 크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가지마다 나무받침을 대고 마치 늙은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여
서 있는 모습이었다.
기대고 기댄 나무 가지마다 은행이 다리다리 달린 체 말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그 힘겨움 속에서도 씨앗을 퍼트릴 인고의 작업, 생존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절로 두 손을 그 앞에서 모으며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무 한 가지 그 힘겹게 걸려있는 은행 한 톨 모두가 자연의 얼굴이다.
자갈밭에서도 꺾어진 가지에서도, 거기에 땅 밑에 깔린 부슬부슬 부서지는 흙에서도
그들만이 상처로 가지고 있는 삶의 흔적을 존경하고 손을 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찌 사람의 손이, 마음이 이 자연스러운 가공미가 들어가지 않은 자연미의 자연만 하겠는가.
꺾어졌다고 이쁘지 않다고 큰 나무라고 작은 나무라고 소쩍새도 꾀꼬리도 두견새도
앉아서 친구 되어 울지 않지 않는다.
그들의 보호를 받으며 살짝 숨어서, 소쩍, 뻐꾹 하고 울며 맑은 꿈과 사랑을 선물한다.
집합체의 하나가 되어 인공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그들은 무상으로 그렇게 하다
어느 곳에선가 욕심 없이 가고 또 오고 또 울고 산다. 참으로 숭고하다.
자연의 소리 없는 비우고 주고 가는 공덕 너무나 감사하고 아름다운 친구들이다.
만일 그 친구가 없다면 내 삶은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삭막할까.
자연 속에 세워져 있는 흘러가고 잇는 것들이 어찌 나무만으로 또 흐르는 골짜기
물만으로 그 흙만으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갈 길 잃은 우리들 모두 모여 생명의 조화를 이루어 신선함을 주는 자연의
신비 앞에 머리를 숙인다.
소음과 욕심으로 가득 찬 이 세상 그 친구들이 없다면 나는 내 문학은 기운을 잃고
금세 죽고 말 것이다. 여름친구는 나를 구할 내 피난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