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보따리

84. 꽃무리의 이야기 <2009 2. 12.>

by 임선영

어느 조용하던 휴일 부모님이 크게 다투시는 소리가 거실 건너 방에서 집채를

흔들었다. 왜 그러셨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어머니의 슬피 우는 목소리를 나는 건넌방에서 들으며

우시는 목소리가 얼마나 가슴 아펐던지 그 기억이

지금도 생각을 하면 답답하다.

아버지 병환 때문에 우리는 잠시 서울 서교동에 둥지를 튼 적이 있다.

자식들 등록금 문제로 힘든 때에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시니 월 말 만되면

아버지 병원비에 아이들 학비 팔아온 시골 논 몇 마지기 값은

정말 세발에 피였을 시절이다.

여하튼 그런 저런 문제로 부부 싸움을 처음 경험하는 사태가 우리를 당황하게 하였다.

우리들은 등을 오그린체 한 발자국도 방을 빠져나갈 용기들이 없었다.

대문이 꽈당 소리를 내며 열리는가 싶더니 어머니는 가방도 아닌 하얀 보따리를 들고

집을 휑하니 나가셨다.

“아니 내가 이놈의 집구석 나가 버려야지, 지긋지긋하다”

이 말씀이 메아리처럼 문틈으로 새여 들어왔다.

아버지를 하늘처럼 모시던 어머니의 행동을 처음 보는 일이라

부부가 살다 보면 저런 일도 있나 보다 하고 아무도 어머니의 뒤를 쫓아가지 않는

방관자들이 되었다.

서로의 눈빛만 큰 일이라도 난 듯 쳐다 볼뿐 속수무책이었다.

그 보다 더한 이별도 견디셨고, 그 보다 더한 조카 자식들을 끌어

안았던 어머니이기에 설마, 나는 어머니를 믿었다.

화난 아버지가 무서워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길 가 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언덕을 내려 가시는 어머니를 소리쳐 부르는 일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뒤도 안 돌아보시고 가시는 어머니 뒷모습이 지금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멍하니 바라본 하늘에 엄마가 들었던 흰 보따리 처럼 흰구름만 둥둥 떠서

정처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밤새 이불속에서 흐느껴 울며 일기장에

눈물 자국을 얼룩을 만들며 왜 우리 아버지는 왜 그리 아프신 거야,

엄마 안 계신 우리 집은 어찌할까 장문에 일기를 쓰던 기억이 있다.

울다 지쳐 잠깐 잠든 사이 햇살은 다시 찾아들었고 훤히 밝은 동창 밖에서

아침 상 차리는 엄마의 딸그락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새벽까지 안방에 불이 켜져 있었고 그동안 건강 때문에 들지 않으시던

술을 드셨는지 살짝 열어본 방문틈으로 술병이 보여 안쓰러운 아버지 마음과 모습 때문에

나는 다시 불안 해지기 시작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후 아버지의 불똥은 제일 먼저 우리에게 떨어졌다.

“야! 이것들아, 너희들이 자식이냐, 엄마가 나가면 쫓아가서 잡아야 할 것

아니야, 왜 그렇게 싹아지들이 없냐”

딸이 차려드린 아버지 아침 밥상은 그대로인데 철없던 자식들은 밥 한 그릇을 거뜬히 해치우는

참 철없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이튼 날 늦은 오후 하얀 보따리 하나를 들고 나가셨던 어머니는

보따리 세 개를 들고 집 문을 그 고운 모습으로 언제 그랬냐 하듯 곱게 웃으며 들어오셨다.

친정에서 가져온 아버지 몸에 좋은 이것저것, 모자란 동생들 등록금 그 흰 보따리 아닌

다른 보따리에 가득 들어 있었다.

생전 잘 가지 않으시던 친정 집에 손을 벌리려 갔다 오셨던 것이다.

피눈물이 났을 마음을 자식들 위해 억제하며 돌아오셨을 어머니 가슴을 생각하며

큰 자식이었던 나는 큰 결심을 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었다.

내가 끊여 놓았던 아무도 먹지 않던 맹탕 콩나물국을 보며

"야야 계집아이가 국 하나도 못 끊여서 쓰겄냐"

혀를 끌끌 차며 수채에 버리시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딱 한 번의 사건이 있은 후 어머니는 이 세상과 이별하던 날까지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소리를 내시는 모습을 보질 못했다.

그리고 고향 집으로 돌아오신 후 손수 싸 놓으셨던 하얀 보따리 속에

만들어 놓으신 명주 수의를 꺼내 입으시고 지금은 우리 곁에서 보따리 들고 떠나시고 안 계시다.

어머니의 허물인양 흰 보자기는 남겨 놓으시고.....

그 허접한 세월을 잘도 견디시고 아버지 보따리 챙겨 보내시고 자식

못 잊어 오셔서 기도로써 챙기시다 다시 가신 그 길 다시 못 올

그 길을 떠나시고 안 계시다.

하도 살아온 길 서러워 좋은 몸 다시 받아 이 세상에 오셔서 다른 한 생을

이미 살고 계실 어머니실 것이다.

자식을 한강에 던지는 부모가 있는 이 어지러운 소식을 보고 느끼면서

옛 어른들의 가정을 끝까지 지키며 자신의 그 허허로운 삶을 운명인양 뒤집어

쓰고 아침저녁 남편 위해 자식 위해 상 없애 달라고 두 손 모으시다 가신 어른이

우리들의 어머니이시다.

가슴으로 주신 선물 신앙 앞에 앉아 맑고 밝고 훈훈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 달라고

기도 할 수 있게 키워주신 은혜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늘 측은 지심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했고 조카자식들을 키워 내셨고, 아버지를

기다리시며 자식을 한 사람도 비뚤어지지 않게 키워내신 내 어머니 난

그 어머니 자식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따리를 싸리라 다짐한다.

지금 태산 같은 무게로 나를 짓 누르는 마음의 어려움 앞에서

나를 귀찮게 하고 흉보는 사람이 흉으로 나를 감정해 주는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되돌리면서 말이다.

언제인가 풀을 흰 보따리를 곱게 싸놓고

자식들 앞에 누가 되지 않는 어미가 되리라 기도 하면서 어머니가 가 간 길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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