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꽃부리의 이야기 <2023년 12월 31일>
모두를 그 구덩이에 빠트려서 살게 하는 아름다운 언어....
그 말들이 없어진 건지 있는 건지 거대한 물질의 놀이 앞에서
정의와 진실은 '눈앞의 이득' 앞에선 휴지처럼 가볍게 버려지는
사실을 말해주는 극단적인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시대 앞에서 우리는 보고픔 이라던가
그리움이란 서정을 말하는 이는 넠빠진 사람 아닐까?
순수가 바보 처럼 되여서 가지고 노는 자리가 너무도 많아서
그곳을 벗어나려면 용감 해 지지만 자칫 사람을 잃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도대체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 몇이나 될까?
그리움이란 무엇인가?
사라진 것이나 없는 것에 대한 끊어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끄나풀이 아닌가.
끄나풀의 한쪽 끝은 머릿속에 응고되어 있는 언제나 나를 살게 하는 추억일 것이며
한쪽 끝은 사라진 것에 대한 기억하기 싫지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기억일 것이다.
삶이란 결국 끄나풀들을 자꾸만 만들어 가며 또 지나가네 " 그리워서 어쩌지" 하며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것은 머릿속에 녹아 기억이 되면서 사라지고 기억 중 일부는
숙성되어 추억이 되는데 그 소중한 것들을 지탱하는 情을 잊고 사는 세대들은
요 사히 이렇게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현란한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시끄러운 음악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갖가지 맛있는 음식은 입맛을 상하게 하고
사냥(물질)에 대한 지나친 몰두는 마음을 방황케 한다.
노자 12장에 나오는 글이 생각나는 요즈음
외롭고 슬픈 날들이 구세대인 나는 왜 그리 많은지 몰러......
물질이 삶을 평가하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살다가 보니 가끔은 그렇게 소란한 속에서 더 마음이 편할 때도 있다.
“여산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그 산속에 있네 (不識廬山眞面目 只綠身在此山中) ”
라는 소식(蘇軾)의 시 구절과 같이
나 역시 그러한 생활에서 반성도 없이 나날을 죽이듯이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는 것‘이라는 푸시킨의 시 구절과 같이
다시는 돌아가지도 못할 그날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무슨 심사일까
문득 떠오르는 괴테의 시 구절을 기억해 본다.
“그리움의 뜻을 아는 이라야 나의 슬픔을 알 수 있어라! “
이것을 알아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나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날들
가끔 옛날이야기에 푹 빠져 동화처럼 들려주려 하면 손자들은
"아이 고리타분 해 그러니까 할머니지, 다른 사람하고 놀아 지금이 어떤 시댄데"
정말 그럴까?
어쩌면 난 그 일들을 붙들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가지고 있는 것을
아낌없이 주고 내여 놓으며 즐거워하고 비록 그 일 들이 상대방에게 하찮은 일로
끝나더라도 내 마음이 그 순간 추억의 부자로 남아 있다면 그리움이라는 것이
상대방의 작은 언저리에서 떠오를지도 모른다는 참 어울리지 않는 떠올림은
정말 구 시대적인 초라한 그리움 만드는 일일 것인가?
그러나 난 그 일이 참 소중하고 귀중하다는 생각을 하는가?
잊어버리는 것들을 챙기며 마음에 살이 쩌지는 어쩌면 기억되지도 못할 그리움을 혼자
만들어가는 또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서정 난 그것 때문에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참 행복한 바보이다.
그렇게 또 한 해 癸卯年은 추억의 끄나풀로 남고 또 내일이면 甲辰年이 무엇을 안고
찾아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