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단상

183. 꽃부리의 이야기 <2016년 3월 4일>

by 임선영

며칠 전까지만 해도 들여놓았던 코트를 꺼내 입게 하는 날씨가

요 사히 변하는 정치꾼들 같이 이랬다 저랬다 가늠할 수가 없다.

오늘은 공연히 걷고 싶은 따스한 봄기운이다.

노 부부가 따스한 봄볕에 나서는 길이 안팎으로 다 병원 길이다.

세월이 흘러도 마음은 여전히 신열을 앓고 새로움을 늘 찾는 것을 아랑곳

하지 않고 세월로 엮어놓은 몸은 따라가지를 못한다.

참으로 허망하지 않을 수 없는 인생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문득 내려다본 보도 불록 빈틈 사이사이 이끼

자연이 주는 무상의 따뜻한 선물을 감사히 받아서 열악한 작은 틈

생을 불평하지 않고 그 여린 연푸른 빛으로 안간힘으로 최선을 다하며

생명을 지켜내는 모습, 여린 숨소리에 눈물 어린 연민의 정을 느끼며

만감이 교차한다.

온다는 기별조차 간다는 말조차 없이 오고 가는 계절마다 마디에서

형형색색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며 그 보잘것없는 생명을 꽃피우고 지는

생사의 힘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지며 자신을 반조해 본다.

어디 살기 좋은 장소이던가?

누가 어여삐 반기여 알아주던가?

오라는 이 없어도 봄기운을 제일 먼저 반기여 척박한 자리에서도

돋아나는 연둣빛, 자연의 여백 위에 붓없는 물감으로 구상이든 비구상이든 유화든

수묵화든 한 구석을 연두로 물들인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을 눈에 보이도록 자연의 화폭 위에 풀어 피는 일

생명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 해 형상화하는 작업 아니던가.

참으로 대단한 한 폭의 조화이다.

모든 예술의 테크닉, 시, 소설, 철학, 종교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예술가나 종교인이나 할 것 없이 마음이 우주의식과 연결되어

순수한 생명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는지, 스스로 포기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불꽃의 순도가 바로 작품성이고 진정성이고 예술성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 들어 언제 어느 곳에서도 소리 없이 드러나지 않아도

깨끗한 순수한 자태 그 모습으로 피어나는 백지의 작품성 어느 누가

감히 이렇게 꾸밈없는 위대한 작품을 그려 낼 재주가 있을 것인가.

난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러한 작가는 윤동주와 같아 한 권의 시집을 펴내지 않았어도

세계인들이 읊어대는 시를 써놓고 갈 것이다라고...

인간의 감각으로 흉내 낼 수 없는 재빠르고 자리를 탓하지 않는 감사의

출현 누가 알아주든 말든 밟든 말든 그저 조용히 있을 뿐이다.


"응 자네 날 발견했어, 우리 같은 생명일세, 날 무시하지 말게"

"무슨 말씀 자네 나 보다 나은 숨소리가, 이렇게 날 일깨우고 있잖아"

무던히 살아가는 내 자리인데도 늘 불평으로 속아리하는 내 삶

조금 불편하다고 신경질 내고 조금 나 아닌 다른 삶에게 밟힌다고 역정 내는

열리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일들 천지이다.

거리거리 구석구석 발자국 딛는 곳마다 공부거리이고 스승이다.

지식이 많다고, 깊고 크다고, 높고 명예를 걸고 나와야만 스승이던가

보잘것없는 장소에서도 높지 않은 가장 낮은 곳에서도

밟히여 아픈 그 자리에서도 날 가리키는 스승은 늘 눈을 뜨게 하고

고개를 숙이게 하고 교만을 버리고 텅 빈 허공이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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