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꽃부리의 이야기 <2013년 3월 15일>
선천적인 능력 없이도 우리는 곳곳에서 많은 미(美)를 느끼고 보면서 살아간다.
한 잔의 다향 속에서도 향기를 맛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거리에 같이 걸어가는
사람에게서도 때로는 향기를 느끼며 걷기도 한다.
가끔씩 나는 앞서가는 여인의 팔랑 거리는 치맛자락이 멋있어서 남자도 아니면서
그냥 따라가는 경우를 처한 때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난 이미 다른 길에 들어서있다.
같이 가던 사람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차리는 경우를 맞이한다.
무언가 한 곳에 몰두하는 맛과 미 그것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어 놓았는지 모른다.
사람도 어느 한 사람을 좋게 생각하면 그 사람이 크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그 사람이 영상이 도저히 없어지지 않고 끝까지 그를 믿고 따르는 얼빠진 일이
너무나 많다. 때로는 바보 아냐 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약삭빠르지 못하고 속기 딱 맞춤인 성격, 그러면서도 속지 않고 바른 길에 서서
예스럽고 소박한 멋을 찾으며 살고 있으니 그 또한 대단한 일이다.
호젓한 산사에서 한송이 핀 풀꽃의 아름다움 때문에 가슴 저미기도 하고
인사동 어느 골목을 지나다 우연히 들른 미술관에 한 점 그림에 취해서
발 길 돌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잠기는 경우가 있다.
그릇도 닦아야 빛이 나듯이 마음도 닦아야 빛이 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반질반질하게 자르르 윤기 있게 닦아서 자신이 내놓은
언어가 빛을 낼 수 있을까?
여기에는 필히 접목이 필요하다. 신앙, 성경이나 교전은 물론 훌륭한 가르침의 언어요
시성의 시나 음악의 악성, 그림의 화성이 또한 아름다우면서도 비우는 곳에서 소리로, 언어로
그림으로 하모니를 이루며 마음을 움직여 위대한 언어로 탄생된다.
삶 속에서 아름다움이 도대체 무엇인가 느끼는 것 많아 무엇이다 꼭 꼬집어
말할 수 없으나 가끔씩 괴롭고 좌절되는 순간 반짝하고 보이는 여러 형태의
예술의 접목이 아름다움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쾌감을 느끼는 경우를
많이 당하여 예술은 마뎌 지나보다.
그러나 돌로 된 어느 조각품에서 오는 미보다는 움직이는 사람으로부터 얻어지는
아름다움은 가지고 싶은 어떤 소유욕이 동반하며 큰 감동을 얻는다.
남녀의 구별을 떠나서 오는 자연스러운 성애의 발로는
그것이 모습이었던, 말이었던, 미소였던, 살아 움직이는 자연인의 행동에서
흘러나오는 미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서정을 불러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자리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위로의 말, 그 아름다움 때문에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외식을 마친 후 우리는 커피 한 잔씩을 들고 조용한 음식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산이 지니는 미감을 이야기한다.
같이한 그는.
의연한 침묵 속에 사시사철 변화가 있고 초탈한 선미가 있음을 묘사하는 높고 깊은 산
자기는 산을 닮으려 한단다.
그는 산을 통해서 인간이 본받아야 할 교훈을 찾는다.
잘 난 체하고 쉽게 변질되며 말이 많은 인간사에 비 해 그가 닮고자 하는 산의 모습은
오늘은 더 새로운 유쾌한 확인이고 특이한 미감의 부여이다.
지렁이도 다람쥐도 호랑이도 다 숨을 수 있는, 숨겨 줄 수 있는 산, 끌어안는 숲이 있는 깊고
높은 산 그리고 조용한 그 산이 되고 싶단다.
그리고 당신은 그 산을 에워싸고 늘 파도로 철썩대는 바다가 돼라 한다.
오줌도 똥도, 오만 더러운 것이 들어와도 그대로 정화되어 푸르른 넓고 푸르고 깊은 바다가
돼라 한다.
그 깊은 산을 기둥 삼아 푸를 물길로 에워싼 체 서로 말없이 위로하며 지내자 한다.
심신이 외롭고 쓸쓸할 때 찾아와 눈을 쉬고 가슴을 쉬고 갈 수 있는 산과 바다가 되자 한다.
듣고 들었지만 오늘은 왜 이렇게 눈물이 흐를까.... 손수건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오며 자리를 지켜 준 당신의 매력은 이렇게 약해질 때의 모습 그것이란다.
인격에서 얻어지는 미감이다.
톨스토이는 미적인 사물에는 종교와 도덕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듯이 인간에게서 얻어지는 미는 진과 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미라 하겠다.
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덕을 지닐 때 인격미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그 인격미의 미는 하나의 둥글고 부드러운 예술품으로 승화하여 가슴에서 물을 만들어 내며
눈을 통해 흐느끼지 않아도 스르르 흘러나오게 한다.
인격미의 감동에서 오는 정화 작업이다.
흐르는 밑으로 함초롬히 꽃봉오리처럼 솟아나는 것은 바로 미소의 꽃이다.
부부라 하여도 존경이라는 단어를 나는 그곳에서 주으며 따뜻한 그의 손을 잡으며
꼭 쥐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