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 꽃부리의 이야기 <2016년 9월 16일>
그리운 사람도 없으면서 있는 척 가을 냄새 물씬 풍기는
옷 치장을 하고 푸른 하늘 아래 만사 떨치고 나셨다.
나이는 들었어도, 멋은 제대로 들어서 옷 색깔 하며 백 색깔, 거기다
구두까지 색의 하모니가 영락없는 가을날에 가을 여인이다.
버스를 탔다. 스스로 문학을 사랑하는 시인이란 긍지에 도취되어
창밖으로 흐르는 콘크리트 벽마저 가을 서정의 기운으로 맞이하게 된다.
답답하고 지루하던 내 생활을 집안 구석에 척 던져 놓고
"야! 너 오늘 혼자 놀아라, 난 자유다" 이렇게 잠시나마 자유인으로
돌아감이 통쾌한가?
밤낮없이 반복되는 여자의 생활의 고리타분한 냄새가 나며 답답한 일인 것을
이제 깨달은 사람 같다.
숨을 쉴 것 같다.
누군가 구속하지 않지만 늘 구속당한 것 같은 여자의 일생 자연의 품 안에 들어
들어 다 보니 가끔의 오만한 방종은 인간 생활에 변화를 위하여 참 소중한 일인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벌써 치매 초기 증상에 시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가끔은
언뜻언뜻 한다.
가끔은 낙서 투성이인 인생의 장을 하얗게 지우개로 지워서 허심탄회한 인화지로
만들어 보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듯하다.
엊그제 명절에 가슴 아팠던 일들이 가끔 스쳐서 삶의 체체기가 또 심해지니
가슴속 오열을 주체할 길 없다.
차려입고 자유스러움을 가장한 내 모습이 순간 가슴 저리도록 서글퍼진다.
완전한 자유는 정말 어느 곳에서도 없는 것인가.
이 구석을 가도 걸리는 것이요, 저 구석을 가도 늘 상전은 있기 마련이니
한 세상 인간사 나 자신이 성불을 하지 않고는 이 세상 성인 다운 말조차도
내놓기가 참 무서운 세상이다.
힘든다고 차례도 안 지내려 오는 며느리 눈치 보느라
밖을 헤매고 다니는 아들, 참 세상 변해도 많이도 변했다.
그렇다고 좋은 말로 타이르지도 못하는 세상 돌아가는 도덕의 부재시대
어! 취한다, 취해 술 없이도 이리 취하는 시대에 내 마지막 삶을 걸치고
살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가을 절기에 취하고 이름 모를 꽃에 취하고 도덕의 부재 속에서 기계로
대학 간판을 척척 찍어 낸 지식의 탈을 하나 쓰고 도덕은 내 동댕이치고
잘못 한지도 모르는 성인을
보고 내 취하지 않고 견디겠는가.
젊어서는 동서가 모르쇠여서 "없는가 보다"를 터득하는데 30년 걸렸다.
한 10년 편해지니 이제는 그다음 대가 한 술 더 뜨니, 큰 며느리 된 것도 죄요
아들 낳은 것도 이리 가슴과 머리를 잡고 흔드니 벌건 대낮에 술도 없이
멍하니 취한 채 멀쩡한 옷을 걸치고 머리를 식히러 외출을 하였으니
앞으로의 세상이 어찌 될지 모르겠다.
내 밥 나먹고 자식 신세 안 지고 사는 우리도 이러니 자식 달랑 하나 있고 돈도
없는 부모는 땅으로 꺼져라인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출세의 길을 포기하고 부모의 봉양을 우선시하여 부모 곁을 떠나지
아니하는 선조의 고사는 참 어리석다 못해 바보로 보이는 짓이다.
그러나 출세의 목표로 살펴보면 부모와 처 자식을 도외시하고 사회나 국가에
유용한 인물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부모를 몰라 보는 판국에 무슨 일을 잘할 수 있고 남과의 대인 관계가
어찌 잘 될 수가 있겠는가.
물 보다 진한 피도 모르는데 물처럼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야 어찌 귀하게 여길 것인가
그냥 흐르고 말겠지.
고로 효자 중에서 충신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맞는 말이다.
명절을 맞이하여 옛 조상들의 모습을 기리며 식구들 오손 도손
모여서 정다운 정 나누기조차 점점 어려워져 가는 시대 속에 사는
시어머니로써, 슬프디 슬픈 쓴 잔을 연거푸 마시며 진하게 취한 가슴이 된다.
그래도 내 업을 소멸시켜가는 며느리 부처님께 모른 척 눈 감고
" 야! 왔냐" 하려고 속으로 속으로 연습을 한다.
결국 모든 결과는 나를 통해서 나만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