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아오는 병오년

303. 꽃부리의 이야기 <2025년 1월 2일>

by 임선영

병오년이 시작되는 둘째 날이다.

뒤 뜰 너머 샛길의 무성한 나무들 지나간 가을바람 속에서 잔기침을 하면서 한 꺼풀씩
비워내고 있다.
마른나무 가지에서 연두로 그리고 또 초록으로 흔들어 대더니 떠나려 하는

길가의 생들 누가 붉은색으로 물들라 하지 안 했건만 자연 전체를 붉은색으로

서서히 하나 되어 물들더니 가끔은 외로운지 가을비 되어 울더니

이젠 찬바람과 함께 나목으로 계절과 동행하는 길목을 걷는다.

최선을 다해 배운 전문성을 바탕으로 맡은 바 사회와 가정 발전에

최선을 다하며 지나온 자신의 세월이라 자부하지만 이제 황혼 녘에

들어서니 지는 계절의 한 모서리에 서서 말 없이 홀연히 오색으로 지며

또 새로 시작하는 병오년의 머리에 서서 많은 생각을 한다.

작품을 제작할 때 사용된 각양각색의 수단의 흔적이 완전히 소멸될 때에

비로소 그 그림은 완성된다 하지 않던가.

뒤뜰 고목나무에서 먹이를 찾는지 짝을 찾아 헤매는지 쪼아대는 새들의 소리가

외로움으로 들려오는 길목을 새해 들어 걸으며 어느 사이 가는 것들이 눈처럼

쌓인 교차로에서 또 주워진 삶의 해를 꾸려가려 사색하는 할머니.....

맞이한 새해 아내라 의지하고 할머니라 불러대는 바쁜 사이사이 아픈 허리 달래느라

초 겨울 새날을 걸으며 이 생각 저 생각 참 많이도 한다.


인생 살이 백 년도 넘기기 힘든데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욕심부리면서 동분서주하던

삶 속에서 귀는 항시 들리는 소리를 즐거워하고 눈은 항시 새로운 것을 찾아보고자

한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날들 난 어디선가 본 듯한 글 귀가 생각난다.

"내 눈이 열리면 그 눈으로 보는 세상도 열리다는 말"

우리도 언제 가는 떨어져 한 줌의 부스러기가 되리니

지금 여기 사는 일이 새삼스럽게 엄숙하고 뻐근해지려고 한다.

한 사진작가가 렌즈로 끌어올린 한 순간의 느낌이

내 가슴으로 전해져 난 두런두런 글을 쓰고 그 주체할 수 없는 느낌을

감출 길이 없다. 걸어온 한 생이 그렇다.


아름답게 피다가 스러지려 하고 있는 생

잎은 소리 없이 피고 소리 없이 진다

다시 떨어진 자리로 가지 않는다.

그날 그곳에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맡기고

한 잎의 생이 이렇다오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최선을 다 해 피고 흔들리다가 떨어져

새로 온 생의 손에 환호를 들으며

무언으로 응답하며 가는 생

영원히 지지 않는 생명의 기쁨으로

후회 없이 떨어진 자리에서

자신만의 빛깔로 빛나다 떨어지겠지.



우리는 물질에 취해 살면서 뒤늦게야 삶의 그 단순한 의미를 깨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경험을 했지만 그 의미를 몰랐었다는 엘리엇의 시구처럼 말이다.

지나간 날들 후회하는 지난 일들을 회상할 때면 생기는 감정의 소용돌이

가끔 사람들은 그 시절이 좋았어하며 수없이 되뇌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다.

현재 삶의 넋두리는 잃어버린 체 과거에 묻혀서

사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가장 큰 후회는 젊었을 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데로 공부 열심히 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들어가서

하는 일을 했을 뿐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이 병오년의 말처럼 달리며 잘 살고 이룬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허무감이 돋아 나는 것은 왜일까?

내 초년은 부모 밑에 아무것도 모른 체 학문에만 전념하여 성적만 우수하면

세상의 보물은 다 다 내 것 인양 즐겁기 그지없었지
나를 이끌어준 부모님의 얼굴은 성적표 따라 나를 보물처럼 위해 주웠으니까.
그런데 난 지금 해 질 녘에 들어서고 나고 보니
이 소중한 자연 속에서 난 무엇을 주워서 가고 있나,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가고 있나를 생각하니 잠시 부끄러움 내 앞을 스친다.
자연 속에 한 미물임을 어찌 깊이 생각하고 가지 않는지, 큰 것도 작은 것도
싱싱한 것도 시들어 가는 곳도 아무 말없이 수용하고 가는 자연이 아니던가.
이 큰 자연 속에 작은 알갱이 같은 내 존재, 무에 그리 잘난 듯 설치였던가.
모든 것 다 놓아야지, 놓고 가야지, 숨 쉬는 것조차 허허로움 아니던가.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기운으로 안아주는 자연 과 더불어 인생을
맞이했겠지 모르고 지났을 뿐이야.

이제 말년 아이들 성장시키고 안정된 터에서 목까지 올라온 세월을 손에 쥐고

있다 보니 건강한 것도 보물이지만 그 건강을 지키기 위한 마음공부

비울 줄 아는 마음공부 줄에 들어가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보물인가

를 새삼 가슴 깊이 느끼고 또 느낀다.

추호도 어김없이 달려드는 맞이한 새 맛의 병오년 세월 속에서 사색이 없다면

그 후의 나를 생각하기엔 벌써 머리를 풀어헤친 겉모양만 사람인

의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신병자가 되어 있을 듯하다.


인생에 목적이 무엇인가

인생에 목적이 뚜렷한 사람은 그 목표에 가고 있느냐 없느냐 그런다.

오감에 균형 감각이 없어지는 시기

아직도 일 할 수 있고 후배에게 모범을 주는 기쁨은 받는 기쁨보다 크다.

다른 사람에게 그동안의 연륜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한 나이

마지막 대답은 잘 가려고 뜁니다 이지 않을까.

언제 가도 나는 행복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다른 사람의 존재이다는 것을 알고 가기

때문일 것이다.

99%가 다 남이 준 나 오직 1%만이 내 것이다라 하지 않던가.

남이 다 주워서 이제껏 잘 혜택을 받고 살았으니 이제는 갚기 위해

인간답게 살다 가야 한다.

결국은 올 때처럼 달랑 기저귀 다시 차고 빈 손 쥐고 갈 인생

작은 기예라도 쓰기에 따라 천금보다 귀하다는 말씀을 깊이 되새기며

밝아오는 병오년 둘째 날에 털고 놓아야 할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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