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 꽃부리의 이야기 < 2022년 10월 18일>
온 길과 가는 길의 교차로에서 / 임 선영
뒤 뜰 너머 샛길의 무성한 나무들 가을바람 속에서 잔기침을 하면서 한 꺼풀씩
비워내고 있다.
마른나무 가지에서 연두로 그리고 또 초록으로 흔들어 대더니 떠나려 하는
길가의 생들 누가 붉은색 감색으로 물들라 하지 안했건만 자연 전체를
서서히 하나 되어 물들이고 가끔은 외로운지 하느님도 가을비 되어 울며
계절과 동행한다.
최선을 다해 배운 전문성을 바탕으로 맡은 바 몸 받쳐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최선을 다하며 지나온 자신의 세월이라 자부하지만 이제 황혼 녘에
들어서니 지는 계절의 한 모서리에 서서 저리 말없이 홀연히 오색으로 지며
무심히 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에 젖는 일이 잦아진다.
작품을 제작할 때 사용된 각양각색의 수단의 흔적이 완전히 소멸될 때에
비로소 그 그림은 완성된다 하지 않던가.
뒤뜰 고목나무에서 먹이를 찾는지 짝을 찾아 헤매는지 쪼아대는 새들의 소리가
외로움으로 들려옴은 내 짊어진 세월 탓이던가.
뉘 부르는 이 없었건만 무슨 인연으로 태어나 기저귀 차고 시작한 인생
오라 부르는 이 없건마는 어느 사이 가는 것들이 눈처럼 쌓인 교차로에서
이 세상 짊어지고 나아갈 낙엽 져 가는 길에 몰려드는 틈, 나도 서있다.
상처입은 자들을 살렸던 사람이건만 세월의 환자로 변 할 날 살릴 것은 무엇이던가
바쁜 사이사이 깊은 사색에 젖는다.
인생 살이 백 년도 넘기기 힘든데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욕심부리면서 동분서주하던
삶 속에서 귀는 항시 들리는 소리를 즐거워하고 눈은 항시 새로운 것을 찾아보고자
한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날들 난 어디선가 본 듯한 글 귀가 생각난다.
"내 눈이 열리면 그 눈으로 보는 세상도 열리다는 말"
우리도 언제 가는 떨어져 한 줌의 부스러기가 되리니
지금 여기 사는 일이 새삼스럽게 엄숙하고 뻐근해지려고 한다.
한 사진작가가 렌즈로 끌어올린 한 순간의 느낌이
내 가슴으로 전해져 난 두런두런 글을 쓰고 그 주체할 수 없는 느낌을
감출 길이 없다. 걸어온 한 생이 그렇다.
아름답게 피다가 스러지고 있고나
잎은 소리 없이 피고 소리 없이 진다
다시 떨어진 자리로 가지 않는다.
그날 그곳에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맡기고
한 잎의 생이 이렇다오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최선을 다 해 피고 흔들리다가 떨어져
새로 온 생의 손에 환호를 들으며
무언으로 응답하며 가는 생
영원히 지지 않는 생명의 기쁨으로
후회 없이 떨어진 자리에서
자신만의 빛깔로 빛나며
가며 지리다.
우리는 물질에 취해 살면서 뒤늦게야 삶의 그 단순한 의미를 깨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경험을 했지만 그 의미를 몰랐었다는 엘리엇의 시구처럼 말이다.
지나간 날들 후회하는 지난 일들을 회상할 때면 생기는 감정의 소용돌이
가끔 사람들은 그 시절이 좋았어하며 수없이 되뇌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다.
현재 삶의 넋두리는 잃어버린 체 과거에 묻혀서
사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가장 큰 후회는 젊었을 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데로 공부 열심히 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들어가서
하는 일을 했을 뿐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이 잘 살고 이룬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허무감이 돋아 나는 것은 왜일까?
내 초년은 부모 밑에 아무것도 모른 체 학문에만 전념하여 성적만 우수하면
세상의 보물은 다 다 내 것 인양 즐겁기 그지없었지
나를 이끌어준 부모님의 얼굴은 성적표 따라 나를 보물처럼 위해 주웠으니까.
그런데 난 지금 해 질 녘에 들어서고 나고 보니
이 소중한 자연 속에서 난 무엇을 주워서 가고 있나,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가고 있나를 생각하니 잠시 부끄러움 내 앞을 스친다.
자연 속에 한 미물임을 어찌 깊이 생각하고 가지 않는지, 큰 것도 작은 것도
싱싱한 것도 시들어 가는 곳도 아무 말없이 수용하고 가는 자연이 아니던가.
이 큰 자연 속에 작은 알갱이 같은 내 존재, 무에 그리 잘난 듯 설치였던가.
모든 것 다 놓아야지, 놓고 가야지, 숨 쉬는 것조차 허허로움 아니던가.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기운으로 안아주는 자연 과 더불어 인생을
맞이했겠지 모르고 지났을 뿐이야.
이제 말년 아이들 성장시키고 안정된 터에서 목까지 올라온 세월을 손에 쥐고
있다 보니 건강한 것도 보물이지만 그 건강을 지키기 위한 마음공부
비울 줄 아는 마음공부 줄에 들어가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보물인가
를 새삼 가슴 깊이 느끼고 또 느낀다.
추호도 어김없이 달려드는 세월 속에서 사색이 없었다면 그 후의 나를
생각하기엔 벌써 머리를 풀어헤친 겉모양만 사람인
의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신병자가 되어 있을 듯하다.
인생에 목적이 무엇인가
인생에 목적이 뚜렷한 사람은 그 목표에 가고 있느냐 없느냐 그런다.
오감에 균형 감각이 없어지는 시기
아직도 일 할 수 있고 후배에게 모범을 주는 기쁨은 받는 기쁨보다 크다.
다른 사람에게 그동안의 연륜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한 나이
마지막 대답은 잘 죽으려고 뜁니다 이지 않을까.
언제 죽어도 나는 행복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다른 사람의 존재이다는 것을 알고 가기
때문일 것이다.
99%가 다 남이 준 나 오직 1%만이 내 것이 다라 하지 않던가.
남이 다 주워서 이제껏 잘 혜택을 받고 살았으니 이제는 갚기 위해
인간답게 살다 가야 한다.
결국은 올 때처럼 달랑 기저귀 다시 차고 빈 손 쥐고 갈 인생
작은 기예라도 쓰기에 따라 천금보다 귀하다는 말씀을 깊이 되새기며
가는 길의 교차로에서 털어야 될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