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 꽃부리의 이야기 <2026년 2월 16일>
대 명절 저녁 기도를 마치고 운동도 할 겸 아파트 뒤뜰을 걸었다.
뒷길에 구성지게 줄나라비 선 메타세쿼이아 길 사이로 이제 막 새로운 봄이 시작될듯한 약간
따스한 바람이 부는듯한 길을 운동삼아 걷는다.
일 년 동안 변해버린 인생과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며 두 부부는 무언의 길 동무가 된다.
구름 한 점 없는 초저녁 하늘가로
"天地靈氣 我沈定, 萬事如意 我沈通, 天地輿我 同一體, 我與天地 同心定"을 되뇌며 걷는다.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난다. 너부데데한 손녀를 늘 무릎에 누위 시고
"달덩이 같은 우리 손녀 잘 살게 해 주세요"
되뇌시며 머리를 쓰다듬던, 별명이 "오새"이던 우리 할머니, 오 씨 성에 이름은 없지만 새처럼 이리저리
잘도 돌아다니신다고 "새"라 이름을 붙여 "오새"가 되셨던 우리 할머니, 손녀들이 할머니를 약 올리려면
온 마당을 오오새 춤추며 다니면 긴 장대를 들고 "이년들"하며 휘젓고 다니시던 그리운 우리 할머니
" 하! 고년 잘 살고 있고나" 하고.... "야 너도 어찌할 수 없이 호호 할머니 되었네"
아명 인" 선자야" 를 부르며 하얀 머리 낭자를 한 할머니가 막 손을 흔드는 듯 추억 속에서 웃고 계신 듯하다.
설날 밤새워 꿰매 주시던 때때옷 인두로 다리시고 동정 달아 주시던 그 손길 추억 안고
떠오르는 인연들의 모습 모습들 이런 때 훌쩍 해 지는 마음 아직도 난 너무 세월을 타는 늙은이인가?
한적한 아파트 뒤뜰을 걸으며 추억 어린 회상에 젖어 걷는 길은 맑은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걷는 한편은 가슴 찡한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밤 길이다.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 둘 다 떠나고 이제 우리의 차례가 왔네 하던 육촌 오빠의 엊그제 해후에 일성
가슴 울적하던 말이 생각나는 설날 전날 밤 걷는 길...
따뜻하던 정들 다 떠나고 없는 세월 속에 어찌 사람만이 이웃이 될까.
아무런 욕심 없이 무상의 선물을 사계절 퍼주는 자연 속에 친구들 나무도 꽃도
예쁜 노래 들려주는 새들도 불어주는 선선한 바람도 이렇게 닮아 살아라 하는
무언의 교훈을 주는 이웃들에게 나는 더 큰 배움을 얻으며 부족한 인생을 영글리고
큰 고마움 느끼며 가는 날이 많다.
큰 어버이로 작디작은 품을 넓혀주고 달래주며 더 소박하고 단순하게
내려놓으며 살게 해 준 자연의 따뜻한 품 그냥 좋다.
사람에 따라 삶의 가치가 어찌 다 같을 수 있을까?
가끔 한적한 길을 홀로 걸으며 행복할 수도 있고, 몇 억 집이 있는 동네에서 집 한 칸 없이도
만족할 수도 있어서 사소한 일에 잔잔한 기쁨을 찾으며 사는 행복도 있을 것이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급해진 볼 일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시원히 볼 일을 보는 기쁨조차
이것 또한 작은 행복일 것이다.
그냥 답답하게 수개월 화장실 세수대에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아 신경이 곤두서고 했는데
수리를 하고 나서 시원하게 쏴 내려가는 물소리만 들어도 속이 다 시원하던 경험
이것 또한 내 일상의 조그마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어린 학생시절 학교에서 왜 그렇게 풀베기를 많이도 시켰는지 모른다.
거름이 부족한 때라 학생 전부가 풀을 베어 모아 놓으면 큰 걸음이 되였었다.
학교 뒤 가까운 산등성이로 친구들과 풀베기하러 가서
우연이 산딸기가 소복이 쌓인 장소를 발견하면 너도 나도 군것질이 부족한 시절이어서
무슨 보물이나 발견된 듯 기뻐 날뛰며 따 먹던 그 행복도 이웃과의 단절로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는 시대에 살면서 생각하니 커 가면서 경험한 정말 서정의 한 마당을 누비고 다닌
잊지 못할 아름다운 행복이었다.
빗방울 한 두 방울 뚝뚝 떨어지던 날 줄달음질 쳐 집안으로 들어서서 마루에 앉아 뒤딸아
몰려온 시커면 구름송이가 소낙비로 변해 마당에 송곳처럼 후득후득 미친 듯이 쏟고 내리면
그 비 맞지 않고 와서 바라보는 그 느긋함 또한 큰 즐거움이 아니었던가.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생각 하기에 따라 기쁘고 즐겁지 않은 일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내 집에서 삼시세끼 맛있게 밥 먹고 손주들 치다꺼리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을 주신
사은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산더미 같이 밀려오니 이제야 철이 들대로 들었는가 보다.
감사 생활이 밀물처럼 초 봄바람 따라 가슴으로 밀려온다.
걸어가는 뜰 숲 넘어 휘영청 보름달처럼 떠 있는 외등이 보름달처럼 어둡지 않은 사색의 뒤뜰
이런 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으니 이 아니 행복 아닌가.
쉬~잉 부는 바람 소리 옷깃 스치는 소리, 혼자 걸어가는듯 혼자가 아니다.
그들이 같이 하기에 내 삶 또한 추억을 되새기며 행복을 느끼고 세월 속에 묻혀 나이 들어가고 있고 세
월도 나와 같이 쉬지 않고 흘러감을 즐기지 않을까?
나도 세월도 세월의 숫자를 잊고 같이 가는 구정 설날 전날 밤의 멋지게 삶을 꾸려준 건강한 외조자의
따뜻한 보살핌을 하나 더 보태는 잘 보내고 맞이할 병오년 전 날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