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길에서 생긴 일

28. 꽃부리의 이야기 (2021년 1월 11일 )

by 임선영

부부가 늘 걷는 길, 코로나로 인해 멀리 가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여 유일하게

허락된 식사 후 집 주위 돌기이다

하루에 6천보 정도를 걷지 못하면

일어서서 나갈 때까지 여보를 불러대는 외조자 덕분에 늘 식사 후 아파트 주위를

걷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오늘도 여전히 저녁 식사 후 내려간 기온에 완전 무장을 하고 길을 나셨다.

요 사히 길거리는 사람도 8시쯤 나가면 사람들이 거의 없다.

1시간 정도 우리는 이 얘기 저 얘기하며 걷는다.

가다가 중간에 군밤 파는 트럭이 사람도 없는 길에 먹고살겠다고 쓸쓸히 불 밝히고

서있다.

"장사가 될까 사람도 없는데, 여보 우리 군밤 사줄까?"

"난 별로 생각이 없는데 당신 먹고 싶으면 사세요"

장사가 안 되는 것을 보고 안쓰러워 샀는지, 먹고 싶어 샀는지 오천 원짜리 한 장이 나간다.

구워 놓은 지 오래되었는지 먹어보라고 입에 넣어주는 군밤이 별로다.

군밤을 씹으며 걷는 길 나는 갑자기

"여보 우리 이렇게 매일 걷는 길이 뭔 길인 줄 알아"

그냥 쳐다본다, 여편네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하고 기다리듯....

" 이 길이 말이야 당신과 내가 매일 손 잡고 늙어가며 걷는 길야, 그렇게 걷더니 결국은 우리가

부천 이 길에서 걷다가 가게 생겼네 "

" 그러게 말이야 세월이 참 빨라"

어쩌다 부천까지 흘러와서 걸으며 할 말 별로 없으니 별 얘기를 다 하며 걷는다.

서울에서 살 때는 올림픽 공원을 늘 손 잡고 걷다가 행여 불평이나 할 참이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여보 함라 촌놈하고 금마 촌년이 손 잡고 이리 좋은 올림픽 공원을 밥 먹고 걸을 수

있으면 됐지, 뭐가 불만야, 복 달아나"

복이 달아났는지 복이 더 붙었는지 우리는 여전히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다.

옆으로 젊은 여자와 늙은 남자 한 쌍이 지나간다.

어깨를 붙들고 걷는다. 보아하니 뭔가를 막 조르며 간다.

여자는 대꾸도 하지 않고 가는데 좀 취한듯한 그 남자는 연신 유치한 말로 꼬시는 듯하다.

외조자가 걷다가 그곳을 자꾸 쳐다본다.

"여보 관심 꺼 뻔한데 뭐하려 그리 쳐다봐, 미쳤지 지 여편네도 한 번 꼬시려면 힘들 텐데

남의 여편네 꼬시기가 그리 쉬운 감~~~ㅎㅎㅎ"

" 참 당신 나이 먹더니 입이 그리 걸어지니 어찌야쓰까~~ 참"

끌끌 혀를 찬다, 난 속으로 자꾸 쳐다보는 자네나 입으로 내뱉는 나나 틀릴게 뭐 있나 하며

혼자 빙긋이 웃는다.

많이 입이 걸어진 이 여편네를 데리고 안 살 수도 없고 기가 차는 듯 하지만 길거리라

여편네 앉혀놓고 법문을 할 수도 없고 자신이 한 모습도 있고 하니 그냥 포기한 듯 손을

툭 놓더니 걷는다.

괜히 즐겁다. 품위를 지키지 않고 내뱉은 이 말이 왜 이리 즐거운지....

가끔 유치 해지면 즐거워지는 늙은이의 노망 같은 말~~ㅋㅋㅋ 혼자 낄낄대며 웃는다.

망팔을 바라보고 망팔을 넘어가는 나이 먹도록 같이 살아보니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허망인지

구분할 줄 아는 나이가 된듯하다.

진실로 마음 깊이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감사한 것이 무엇인가 쪼끔은 깨달아져서 서로서로

다독이며 안아주고 모자라는 것은 눈 감아주고 서로 위로하며 공감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어

좋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줄 알아지는 철이 들은 듯하다.

특히 이번 코로나가 주는 교훈은 그동안 인간들이 정녕 알아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조물주의 경종이 아니던가?

지금까지 옆에 있어 이리 같이 걸으며 걸은 말 서로 해도 욕되지 않게 보이는 나이 되었고

내 칠 수 없는 나이 되어 그저 손 잡고 언제 갈지 누가 먼저 갈지 모르는 길을 같이 걸으며

군밤 먹으며 걷는 코로나 소식 가득한 이 밤 길이 얼마나 소중하던가.

같이 늙어가며 천천히 걷는 길이 그저 감사한 길이다.










작가의 이전글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