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꽃부리의 이야기 <2014년 10월 27일>
어둠은 마음과 우리 눈에 평온을 준다
동해 바다는 하늘을 이고 이미 검은 색칠을 끝마치고 그 위에 커다란
노랑 커다란 점 하나가 마치 그곳을 기도를 하라는 듯 선명하게 동그라미로 빛을 발하고 있다.
나는 그곳에 두 손 모아 일심을 모으고 있다.
참 편안하고 고요한 밤이고 가슴이다.
그것도 잠시 오늘 하루의 일들이 잡다하게 머리를 시끄럽게 한다.
한쪽 숙소에서 울음 섞인 웃음소리가 자지러진다.
가는 인생이 서러워서일까, 모처럼 만남이 즐거워서일까
울음도 아니요 웃음도 아닌 서글픈 한 밤의 소리소리들~~~
인간은 참 묘한 동물이다.
소리가 없던 친구가 한 잔의 물이 넘어가면 그 밤을 꼽새며 웃고 울으며 솔직 해 진다.
제 정신을 좀 놓고 나면 솔직 해 진다고 보면 된다.
이런 친구 일 수록 함께 여행을 하면서 즐기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 친구의 인생은 캄캄한 밤과 같다.
동창이라는 그 작은 불빛의 인연으로 눈에 그 부분만 보일 뿐이다.
모두 왁자지껄하며 흥겨워하고 본인의 흉까지도 솔직히 드러내며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는 감격적인 친구 속에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웃지도 않고
그 광경을 잠자코 바라보고 있는 친구가 있다.
별로 즐기지 않는 것 같은데도 다음 여행에서 초대를 하면 별 반응 없이 "그래"하며
거절 없이 또 참가한다.
좋게 말하면 겸허 한 사람 주제넘는 행동을 안 하는 사람, 조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주제넘게 말하면 "뜻이 분명치 않은 사람" 사교적이지 못한 사람" 이런 친구들은
최소 두어 번 불러 내다가 멀어지기 일 수이다.
진정한 친구의 조건은 긴장을 풀고 자기를 드러내서 서로 편해지는 것이다.
남 앞에 단정한 모습을 보이고 싶고, 미움 사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 생물의 속성이고
사실 너나 할 것 없는 특징이다.
이른바 자기 방어 본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며 이런 때는 결코 우리는 편하지 않다.
소위 자기를 너무 던지지 못하고 꽁꽁 묶어두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이렇게 자신을 남에게 허심탄회하게 던지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이 대단히 서툴다.
뭐가 잘못된 것이 없나 눈여겨보며 소리 없이 비웃는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웃고 있던가, 어디에 헛점이 없나 고양이가 쥐를 잡듯 고누고 있다가 확 차여 잡는 순간 발탁형이다.
또 그런 사람은 공연히 어느 곳이 아프다고 엄살을 떠는 경우가 참 많다.
고독이 병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픈 것이 아니라 참 내가 고독하고 쓸쓸합니다. 외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관심을 집중하게 해서 외로운 곳에서의 도피처를 그렇게 찾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자기 우월을 확대화시키는 만족형이다.
어려서의 소꿉친구나 한 솥 밥을 먹은 친구는 우정이 오래 지속되는 것도 흉금 터놓고 편하게
지내기 때문이다.
항상 저 사람이 허점은 없나, 나를 견제하지는 않나, 혹시 자기를 함정에 빠트리지는 않을까?
의심병에 걸려 있는 사람은 자기 방어 자세를 지키는 고독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비밀이 많은 친구는 진짜 친구라 할 수가 없다.
불 하나가 들어오고 또 그 옆에 총총히 하나, 둘 , 셋 연거푸
캄캄한 밤하늘 같은 자기 마음에 불을 켜 듯이 들어낼 때 어두운 곳은 밝아지며
거기에 집도 있고 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그곳을 향해 무엇인가를
필요한 무엇인가을 찾으려 들를 수도 있고,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불을 밝힐 때 서로는 더 친해지고 확실히 알 수 있어서
본인을 내 던져서 진정한 본성의 친구가 될 수 있고 이웃이 될 수 있다.
자기의 약점을 결코 보이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친구는 생기지 않는다.
나와 남의 가치를 높여주는 기분 좋은 만남 그것은 단지 바라만 보고 조용히
있는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남보다 더 많이 알고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어, 너희들한테 섞이는 일은
내가 낮아지는 일이야, 그 수준에 내가 섞이다니 안될 일이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존경을 받고
마음공부를 한다면 천하에 없는 직책을 쥐였다 하더라도 자신의 공부를 기초부터 다시 해야 하는
생활의 기초공사가 잘못되었다 보면 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혼자 살고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가족이 있고 초면이든 구면이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모나지 않게 잘 지내는가가
중요한 삶의 포인트다.
대수롭지 않은 듯한 여리고 안쓰러운 곳에 배려나 마음을 두루 써 주는일, 항상
처 해 있는 그곳에 주인의 의식을 가지고 낮아지는 일
내가 누군데, 내가 너 같은 것을, 내가 니 밑에서 이렇게 마음을 옹졸하게
쓰는 풍부한 인생을 살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마음공부로 상을 탄다
장님이, 귀머거리가 치장을 하고 나 보라는 듯 앉아 있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이제 60고개 중반 지금까지 나 자신의 긴 인생을 뒤돌아다 보았을 때 절실히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시 꼭 만나고 싶다"이다.
그렇게 살다 간 나를 꼭 민나고 싶다이다, 꼭 그렇게 더 열심히 살고 싶다이다.
왜냐하면 좋은 만 님과 삶은 반드시 풍부한 인생을 만들기 때문이고 나에게 가장 훌륭한
체험이었기 때문이다.
뻔히 들어내여 그가 나를 볼 수 있고, 그가 나를 손 가까이 도와주려 할 때
하늘의 힘은 밝은 서광으로 내 삶을 온전한 환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마치 아침 서광이 힘차게 떠 올라 희망찬 하루, 한 인생을 끌고 가듯이 말이다.
가정의 그 희망찬 서광은 바로 어머니다.
가정을 잘 꾸려가는 어머니는 모두 참 칭찬을 잘한다.
어머니가 한 가정의 일원들을 칭찬으로 이끌어 주고 본인의 모습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내여 보여주고 안아주고 칭찬해주고 웃어 주는 일 그러면서
건강한 가정 속에서 하나로 꾸려 가는 일이 사회를 나라를 세계를 잘 꾸려가는 일일 것이다.
나는 늘 기도를 한다.
본인이 내놓은 말에 책임을 지고, 비록 힘에 부치더라도 질머진 짐을 끝까지 잘 질머지고 즐겁게
얼마 남아 있지 않는 인생 빛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나를 꼭 그런 날을 만나고 싶다고.....
나를 낮은 곳에서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내 인생의 커다란 마지막 스승
상상을 초월하는 인간으로 소리 없이 인도하는 신앙의 말씀 속에서
마자막 남은 인생 좋은 만남으로 문학의 꽃 활짝 피우고 가기를 염원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