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꽃부리의 이야기 <2022년 12월 20일>
시를 잘 써 보겠다고 공부를 시작하던 시절
오손도손 써온 시를 강의를 들으며 고쳐 쓰고 담소하고 서로 돌아가며 맛있는 식사를 하며
담소하며 즐겁게 모이던 그 시절 난 그 자리가 좋고 좀 유치한 말로 질 좋고 가품 있던
한 사람 한 사람이 좋아 " 그래 이 자리에서 멋지게 시를 써 보자" 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시인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 글 벗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리를 비운 우리 청시의 터에서
인사동 거리를 걷다 보면 그들이 시를 낭송하던 모습이 생각나고
온화하게 웃으며 눈으로 말하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지나온 인생 이야기들을 하는 자리가 포근하기만 한 오늘.
난 그들에게 무언가 내 마음을 막 전하고 싶은 향기를 느낀다.
먼저 은유적인 보고픔이 흐르는 기운을 찾아 그 자리에 앉고 싶은
순수한 그 마음을 따라 만남을 주선해 본다.
많은 독서를 통해 은유의 상상력을 키우는 말과 글의 토양이 되는
주위에 몰려드는 관조를 통해 자신에게 스며드는 씨를 관리하는 일
직접적인 표현보다 은유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을 풍부하게 설득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인연들을 보면
결과들은 서령 나에게 큰 물질적인 거래가 없이도
상대방의 가슴을 울리는 은유적인 감동이 물결처럼 다가와
보고픈 향기를 만들어 내지 않던가.
우리가 어느 현장에서든 복 잡힌 과정이 있기 마련인데 그 복잡한 알고리즘
과정을 감당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모든 역사에서 보면 지식과 지혜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분들을 보면
은유적 상상력이 풍부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다.
특히 요즘처럼 시끄러운 정치판에서 정치인들이 은유적 예민함을 갖고
있었다면 정치는 훨씬 품격 있고
상상을 초월하는 멋진 정치판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을 사귀는 일면과 나 자신이 처해서 사귐에 끼어들어 함께 함도
먼저 상대방의 말씨 맵씨 솜씨
사람을 만나면 제일 먼저 풍겨오는 씨의 흐름을 보게 된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라 하지 않던가.
온유해 보이고 웃음이 가득한 모습을 보면 따스한 햇살에 쪼그리고 앉아
소꿉장난 하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며 때 되면 밥 먹으라고 부르던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든 일들이 직접적으로 도전하고, 내뱉고 막된 판처럼 돌아가는
이 사회의 판 속에서
옛 선인들의 지식과 지혜가 겉 들어진 삶의 자락은 자연과 벗하고 독서와 가까이하며
은유적 소양을 키우며 자라왔던 물질 위주가 아니었던 삶의
성장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회가 좀 더 부드러워지고 그 선진들이 은유를 통해 만들어 놓은 과학적인
알고리즘들이 훌륭하게 쓰이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난 바보인가 그런 판에서 느긋 해 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