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순간은 어디로 갈까?

인간을 이루는 무형의 작용들 02.

by 슴순
사라지면 좋겠다.
어차피 다 사라지는 거라면
내가 하는 모든 것, 애써 한 노력에
마음도 덜 쓰고, 덜 복잡하도록
가벼운 입김만큼 흘려보내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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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아내기 위해 꾹꾹 눌러 모은 마음,
어느 날 흔적도 없이 허공으로 빨려 들어간다면
너무 허망해서 서린다.
하나라도 영원히 간직해갈 수 있다면.


인간은 언젠가 모두 다 잊어버린다.



이걸 되뇌는 두 날이 있다.

날씨도 이상하고 가뜩이나 몸도 안 좋다. 오늘따라 이상하리만치 풀리는 일 하나 없는 날이다. 내가 닿는 곳마다 부딪히고 깨진다. 이럴 땐 참기 힘들 정도로 아픈 순간도, 너무 힘든 이별도, 수치스러운 기억도 결국 끝나 흐려진다는 걸 떠올린다. 그럼 꽉 막힌 비닐에 구멍이 난 듯, 해방감이 밀려온다.


한 날은 인생에서 그토록 바라던 게 일어나는 기적 같은 날이다. ‘나에게 이런 일이’싶은 날. 기쁜 그 와중에도 생각은 떠오른다. 내가 겪은 생생한 감정도, 기억하고 싶은 사람도, 웃으며 꺼내볼 수 있는 순간까지 전부 무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어쩐지 쓸쓸하다. 이 쓸쓸함에는 막막한 두려움이 있다. 내 기분을 아무 병에 담아서라도 평생 간직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사라지기 전의 찰나간절해진다.


사라지는 것에는 해방두려움이 짝을 지어 찾아온다.


그래서 인간은 종이를 쫓기로 했나 보다.

무언가 남기고 싶을 때는 종이만 한 게 없다. 감정이 휘발되고 기억이 날아갈 때도 이라는 종이는 여기 그 자리에 있다. 나를 떠나지 않았는지 늘 감시할 수 있고, 숫자의 형태로 증식까지 한다.

무형의 것을 무서워하는 인간은 집요하게 사라지지 않는 종이에 매달린다. 때로는 종이 한 장에 양심조차

탈탈 털어 거래 가능하다는 듯.



사라지지 않는 것을 쫓아온
세계는 영원할까?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손에 넣은 유형의 세계는 영원할 것 같지만 반드시 쓰레기로 돌아간다.

나를 채우는 식사부터 닳아 없어질 옷, 방전될 자동차와 허물어 가는 집까지 형태가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도 예외는 없다. 사라지지 않는 종이를 쫓아 손에 넣은 것들은 모두 부서지고 썩는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쏟아붓고, 그 돈으로 더 나은 물건을 사지만 그 물건들은 ‘잠시’ 우리 곁에 머문다. ’더 새롭고 좋은 것’을 향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다시 돈을 쫓길 반복해야 한다. 그 반복이 일어나는 동안 쓰레기통은 점점 넘친다. 공허하게도.


그런데, 쓰레기통이라는 말은 이상하지 않은가?

책상 위에 놓아도 쓰레기통에 넣어도 결국 다 같은

지구 위에 놓인다. 인간은 쓰레기통을 외부의 어딘가로 옮겨주는 편리한 수납장이라고 생각하지만, 단지 당장의 눈에서 멀어지는 것뿐이다. 지구에는 죽은 몸을 묻는 자리와 수명을 다한 것이 한데 모여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소각한 것들은 재와 미세먼지, 가스와 증기로 변해 다시 우리 위에 머문다.



그럼, 무엇을 쫓아온 거야?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지? 손에 넣은 반짝이는 유형의 것들이 당장 내가 사는 동안 편하게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거 아닌가?”라는 말은 어쩌면 당연한 목소리다. 차가운 현실에서는 뜨겁게 순수한 열정만으로 생존할 수 없으니, 돈이 그 어떤 형이상학적인 가치보다 우선시되곤 하니까. 내가 남긴 물건들이 많은 재와 증기를 남긴다고 해도 떠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하지만 돈이 주는 편안함을 넘어 충분함을 추구했다면 어떨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여행을 하고, 무언가를 창조하고,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경험들. 이 경험을 위해 사용되는 유형의 것들은 똑같이 쓰레기가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이야기는 기록으로, 기억으로 남아 오래도록 전해진다.


생각해 보면, 형태가 있는 것의 기저에는 언제나 무형이 있었다. 돈은 의미가 깃든 종이이고, 비싼 물건은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의 형상이다. 내면의 결핍을 형태를 빌려 마음을 남기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편안함을 넘어 '충분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내면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다시 또 형태가 있는 무언가를 하염없이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쓰레기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그 쓰레기가 될 물건들을 통해 어떤 '사라지지 않을 가치'를 만들어냈을 때, 비로소 진짜 당당해질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소유'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남겼는지가 도착점인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우리가 남긴 그 소중한 이야기와 기억들은 과연 어디로 가서 영원이 되는 걸까?



사라지는 순간은 어디로 갈까?



인간이 유한성을 극복하는 방식은 대를 잇는 이야기와 기록으로 남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기록 없이도, 살아낸 방식 자체가 기록이 될 수 있다면?

이 이야기가 과학적 증명을 넘어선다 해도, 현실은 언제나 해석하는 눈에 따라 전혀 다른 광경을 드러낸다.


“It from bit"

물리학자 존 휠러는 세상이 물질이 아닌, 정보(Bit)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장을 남겼다. 우주의 뼈대조차 단단한 물질이 아니라, 확률로 존재하는 정보라면, 삶을 관통하는 기억과 감정, 이야기에는 ‘의미’라는 고밀도의 정보 덩어리가 있지 않은가?


지구가 쓰레기를 모으듯, 우주는 정보를 모은다.
거대한 우주는 차갑고 광활한 기록 보관소같아서, 정보는 블랙홀에서도 소멸되지 않는다.
글 한 줄, 말하지 못한 감정, 기록되지 않은 순간, 역사 속 끝까지 지켜낸 마음까지— 모두 입자의 진동과 파동으로 흔적을 남긴다. 사라진 순간은 없다. 지금 이 순간조차, 우주 어딘가에서 영원히 울리고 있다. 우주는 완전한 소멸을 허용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해독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살아가며 잊어버린 수많은 순간이 있다.

태어날 때의 감각,

‘이것만 안 아프면 소원이 없다’고 느꼈던 고통,

길 가다 마주친 이름 모를 친절,

너무나 바라던 것을 마침내 이루어낸 첫 순간—

이런 순간은 영원히 묻혀있다가, 내가 꺼내줄 때 유일하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사라진 순간들은 먼 별빛이 시간을 건너 하늘에

도달하듯, 아직 닿지 않은 미지를 향하고 있거나, 이미 내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되고 있으리라.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이 문장은 나에게 이렇게 들린다.

"썩어 없어질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히 네 안에 남을 것들에 집중하라."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의 선행,

누구도 모르는 양심적인 선택,

눈에 보이지 않는 성찰의 순간들

이런 무형의 가치들이 현실에서 빛나는 별사탕처럼

남았다면, 돈보다 더 모았을까?



질문 부스러기 # 7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