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 달 이야기 > 경쟁과 도전 ②-② 새로운 도전 & 에필로그
헬륨3이라는 희귀 원소가 있다. 헬륨3은 헬륨의 동위원소로 자연상태에 존재하고 있는 원소이지만, 그램 단위로 발견될 정도로 희귀한 데다 뚜렷한 효용 가치가 없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1972년 마지막으로 발사된 아폴로 17호가 임무 수행 중 달의 표층에 헬륨3이 다량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당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86년 이 헬륨3이 핵융합 발전의 핵심 연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연구결과 밝혀지면서 차세대 핵연료로서 새삼 각광받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잊혀져 있던 달의 헬륨3이 관련 분야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달 탐사선을 활용한 정밀조사 결과 달의 표토와 지하에 무려 100만 톤에 이르는 헬륨3의 분포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조사결과는 당시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달을 또다시 우주개발 경쟁의 각축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바야흐로 신우주경쟁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미‧러 양국의 경쟁만이 아닌 세계 각국이 참여하는 무한 경쟁의 양상을 띠며 말이다.
20세기 말에 서서히 불붙기 시작한 경쟁은 21세기에 이른 지금 그 경쟁이 절정에 달하고 있다. 2003년 유럽은 최초의 탈 탐사선 스마트(Smart) 1호를 달로 보내 임무를 수행토록 하고 있고, 2007년에는 일본의 셀레네(Selene, 일본명 ‘가구야/かぐや’-달에서 온 아가씨)호, 중국의 창어(항아/嫦娥, 달에 사는 선녀) 1호가 각각 발사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인도가 찬드라얀(Chandrayaan, ‘달 탐사선’이라는 뜻) 1호를 발사하며 달 탐사 대열에 당당히 합류하기도 했다. 이 이후에도 우주 개척의 정통 강호인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달 탐사와 개척을 위한 수많은 장비들을 달로 쏘아 보냈다. 2022년 현재 달의 궤도에 달 탐사선을 운영하고 있는 국가로는 미국‧중국‧인도‧유럽연합‧일본 등 5개국이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미국‧러시아‧중국 3개국은 달에 탐사선을 착륙시킨 국가목록에 이름을 등재해 놓고 있다. 그리고 2023년에 이르러서는 8월 23일, 인도의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의 착륙선인 비크람이 달의 남극에 착륙하면서, 인도는 달에 탐사선을 파견한 네 번째 국가가 되었다. 아울러 달의 극지방에 탐사선을 보낸 사상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한편 우리나라도 달 탐사 대열에 합류하기 위한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우주항공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Korea Aerospace Research Institute, KARI, 1989년 설립)을 설립한 이래 우주 개척 관련 임무를 수행해오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에는 차세대 달 탐사선 개발을 위한 ‘달 탐사 2040 계획’을 수립‧발표하여 관련 임무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2030년대 말, 우리도 우리가 쏘아 올린 달 탐사선이 달에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교교(皎皎)하다’라는 형용사가 있다. ‘달이 썩 맑고 밝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말은 어감과 뉘앙스에서 사전적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감성을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달의 아름다움과 사방에 비치는 달빛의 은은함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멋들어지게 표현하고 있다. ‘교교한 달빛’이라는 표현은, 깊은 밤 달빛이 흩뿌려 주는 은백(銀白)의 향연을 그냥 한마디에 담아내고 있다.
보름달이 환하게 뜬 밤, 그 교교한 달빛에 물든 밤의 정취는 옛 시인의 영혼마저 잠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고려의 시인 이조년은 하얀 배꽃이 만발한 어느 봄밤, 세상으로 쏟아지는 달빛에 취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노라고 노래했다. 우리의 옛 시인은 교교하게 비치는 달빛의 서정에 밤잠을 설쳐가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고백하듯 노래했던 것이다.
요즘의 우리는 달을 잊어버렸다. 너무나도 바쁜 밤의 일상과 휘황찬란한 조명에 묻혀, 달의 존재조차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일상의 편리함과 물질적 풍요로움의 대가로 받은 팍팍해진 삶과 도시의 삭막함 때문이다. 옛사람들이 잠까지 설쳐가며 누리고 감상하던 달빛의 교교함은 지금의 우리에게 낯선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제 우리는 삶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팍팍한 삶 속에서나마 한 번씩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또 한 번씩은 주위를 살펴볼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가져야 한다. 돌이켜보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우리네 삶이 고단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수렵과 채집으로 생명을 영위하던 원시사회부터 첨단 IT기술로 무장한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생존을 위한 삶의 서사가 치열하지 않았던 때는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근대사회 이전의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아가야 했다. 현대인들이 향유하고 있는 안전과 질서와 존중의 가치는 조금도 누리지 못한 채, 목숨을 건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했을 뿐이다. ‘생존경쟁’이라는 냉혹한 삶의 멍에는 현대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옛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기로(岐路)에 선 위태로운 나날들을 이어가면서도 삶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교교한 달빛을 벗 삼아 밤새 흥에 취해 가면서 말이다. 더 먼 옛날 중국의 이태백이라는 사람은 강물에 뜬 달을 건지려 물속으로 뛰어드는 낭만 어린 객기를 부리기도 했다. 이제 우리도 조금은 여유를 가져 보자. 한 번씩 밤하늘을 바라보며 달빛에 취해보기도 하고 ‘반달배’를 타고 서쪽 나라로 여행을 떠나며 말이다.
<달 이야기 & 제1부 (우주) 끝>
제2부 (지구)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