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더로인의 '고객'들을 위한 하루

의류 기부 정리

by Jiah Lim

투어 가이드는 아니지만,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를 설명할 때 텐더로인을 뺄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챗지피티의 정의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 중심부에 자리한 텐더로인(Tenderloin)은 마켓 스트리트와 시빅 센터, 고급 쇼핑가인 유니언 스퀘어 사이에 낀 작은 동네다. 오래된 SRO(Single Room Occupancy; 단칸방) 호텔—부엌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기숙사같은 건물 구조를 일컫는다. 이곳에는 이민자 가족들도 많이 살기 때문에 단순히 홈리스들만의 거주지라고 치부하기에 무리가 있다—, 노숙인 쉼터, 사회 복지 기관이 밀집해 있어 도시의 무주택 인구가 가장 많이 모이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거리에는 약물 거래와 중독, 소규모 범죄가 드러나 있지만, 동시에 오랜 이민자 커뮤니티와 저렴한 식당, 역사적인 음악 공연장과 예술 공간도 공존한다. 치안 문제와 거친 분위기로 악명이 있지만, 고급화 압력이 거센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여전히 저소득층과 작은 문화 공동체가 버티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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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종종 다니고 있는 공연장 Music City San Francisco, 멤버쉽 가입을 하면 미국내 많은 뮤지엄에 공짜 입장이 가능한 Tenderloin Museum, 그 밖에 내가 좋아하는 인도/네팔 식당 Red Chilli Halal 식당이 모두 이 텐더로인에 모여 있다.

St. Anthony’s 라고 텐더로인에 비영리단체가 있다. 홈리스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주기적으로 의류를 쇼핑할 수 있게 해주고, 기초 컴퓨터/IT 교육도 해 주는 말하자면 마을 회관 같은 곳이다. 나는 원래 soup kitchen 자봉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자봉 사인업을 하는 순간에, 부엌이나 IT 교육원은 사람들과 많이 부딪혀야 하고, 약해진 내 면역력이 걱정도 되고 해서, 대면 접촉이 덜할 것 같은 의료 기부 파트에 지원을 했다.

38번을 타고 Jones-Taylor에서 내렸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Jones-Taylor는 텐더로인과 Nob Hill의 경계 부분이다. 옛날에 Nob Hill에 살 때 많이 지나다니던 곳이지만, 판데믹 이후 이렇게 텐더로인 한가운데를 4블럭이나 뚫고 걸어보는건 몇 번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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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봉사 하러 가라는 계시인지, 앞서 걷던 한 남자는 SF Giants 팀의 야구선수 이정후의 이름이 새겨진 저지를 입고 있다. 여기서부터 감지됐다, 텐더로인에도 흐르는 한류.

Golden Gate Ave에 들어서자, St. Anthony’s가 바로 보인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2층 FCP(Free Clothing Program)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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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두 번째로 간 날. 지난 번 봤던 스태프 파비오도와 자원봉사자 메리조이님도 계셨다. 거의 두 달 만에 왔는데, 메리조이님은 그 새 수술 받은거 다 회복하시고 이 방 저 방 날라다니시는 중이었다. 이전에 한 번 본 사이라고 반가웠다.지난 번에는 파비오가 기부 받은 옷을 골라 수납, 전시 준비를 하는 전반적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었고, 오늘은 이안이라는 스태프가 골라진 옷들을 옷걸이게 걸어서 rack에다 정렬하는 일을 부탁한다고 했다. 한국인의 일심으로, 나는 곧바로 트롤리를 밀고 품질 필터 후에 골라진 옷들이 담긴 바구니를 싣고, 옷걸이와 이동식 옷장이 있는 코너로 왔다. 바지, 셔츠, 스웨터, 외투 등을 옷걸이에 걸어 착착 해당 사이즈 태그가 있는 부분에 걸기 시작한다. 어라? 파타고니아 레인 자켓, 거의 새거네? 아우, 이런 레깅스는 기부하기에 거시기하지도 않았나? 옆에서 같이 옷을 골라 걸던 중년 백인 남성분이 ‘이것은 셔츠인가 바지인가’를 물어왔고, 셔츠로 가자고 제안했다(바디 수트였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시면서 ‘아 정말 감이 안온다’며 흐흐 웃으시길래 나도 같이 웃었다.

샾 뒷쪽에 있는 이 ‘prep room’은 제법 크다 . 지난 번에는 샾으로 나가는 문에서 제일 떨어진, 그야말로 공간의 제일 구석탱이에서 기부된 옷들을 1차 분류 했었다. 세상에 까만 쓰레기 봉투에 잔뜩 들은 옷들, 박스에 깔끔하게 들어있는 옷들, 기부자의 성격과 정성에 따라 기부된 옷들이 들어오는 폼새는 가지각색이다. 얼룩이 조금이라도 있거나, 모양이 변형된 옷들은 가차없이 버려진다. 저번에 메리조이님이 ‘나라면 입을 옷도 여기서는 버리게 돼요’라고 알려주신 게 기억 난다. 이런 필터링을 3차까지 한 후에야 비로소 샾에 옷들이 전시된다. 홈리스 고객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이 곳에 와서 옷을 고를 수 있다는데, 그들을 돈 내고 물건을 사는 일반 고객과 다름없이 대우한다. 부를 때도 고객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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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용 한국 브랜드 옷이 보여서 기뻤다. 이것으로 한국 의류 텐더로인 진출, 인정.

오늘 몇 박스나 걸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중간에 물 한 번 마시고, 화장실도 안 가고 열심히 옷을 정렬해 걸었다. 파비오가 ‘3분 후가 3시간 마크니 이제 정리하고 가셔도 되요’ 했을때 좀 많이 기뻤을 정도로.

건물 밖을 나오니, 아직도 해가 쨍쨍. 샌프란에 드디어 여름이 와서 기온도 따땃하고, 안개도 끼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날씨에 황홀함을 느끼며 걷다 보니, 텐더로인에서 성공적으로 리모델링된 공원인 듯한 Father Alfred E. Boeddeker Park이 나온다. 아름다운 날씨에 공원에서 앉아 담소 나누는 사람들, 농구 하는 사람들, 뛰어노는 아이들, 보기 좋았다. 그래, 텐더로인이라고 지저분함만 있으라는 법 있냐. 저런 깔끔한 공원도 있고, 하는 찰나 땅에 똥이 보였다. 사람똥 같이 보였어. 으으, 난 텐더로인이나 소마나 맛있는 식당도 많고 한 것은 좋은데 이 똥의 존재와 냄새는 정말 견딜 수 없다. 세상에 2025년에 대도시에 인분이 웬말이냐고. 숨을 참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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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걷는 운동복 차림의 남자도 St. Anthony’s의 ‘고객’이 아닐까 싶었다. 신발을 묘하게 짝짝이로 신고 있었기 때문에 추측건데.

Geary랑 Leavenworth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다다랐다. 이 부근 38번 버스에는 재밌는 군상들이 많다. 무서움이 많은 분들은 버스를 여기서 타지 말고 몇 블럭 더 걸어서 Van Ness 정류장에서 승차하는 걸 권한다. 뭐 Van Ness라고 훨씬 더 안전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조금 낫긴 하므로. 판데믹 이후 우리 모두의 정신건강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다. 지난 번에는 미션에 가다가, Van Ness 언저리에서 49번 버스에 스케이트보드를 든 ‘불안정’하게 보이는 청년이 하필 내 앞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뒤돌아 나를 보며 욕을 하는 거다. 섬뜻했지만 태연한척 계속 핸드폰을 봤다. 승차 내내 있는 욕설 없는 욕설을 혼잣말처럼 내뱉더니, 내릴때 급기야 스케이트보드로 버스 문짝 두 개 모두를 빡! 내리쳐서 금을 내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IMG_7477.jpeg 요즘 사람들의 정신세계, 더군다나 샌프란 홈리스들의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위험 수위인 것 같다. 다들 버스 탈 때는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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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냄새와 햇살, 불안과 친절이 뒤섞인 동네. 오늘도 텐더로인은 샌프란시스코의 민낯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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