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내가 구겨 신은 신발 뒤꿈치에
바느질로 기워놓은 것 처럼, 어린 시절 내내 따라다녔다.
나는 씻는 걸 싫어했다. 주인집 할머니가 손주들을 키우기 시작하며,
공용 마당에서 내복바람으로 씻는건 춥고 부끄러웠다.
덕분에 내 머리엔 늘 이가 있었다.
반에서 이가 돈다 하면, 모두 나를 의심했다.
엄마가 주말이면 결이 촘촘한 참빛으로 이를 잡아내고,
역한 냄새가 나는 하얀 가루를 머리에 뿌렸다.
집에서 자른 짧은 머리에,
남자 옷인지 여자 옷인지도 모를 옷을 입고 다니니,
선생님들은 나를 마주치면 “너는 여자냐, 남자냐” 툭툭 내뱉듯 물었다.
여자 아이들 몇몇이 교무실 청소를 하러가면,
이상하게도 나는 그 애들이 부러웠다.
그 일은 왠지 선택받은 애들만 하는 것처럼 보였고,
선생님들이 고맙다고 웃어주는 것도 신기했다.
어느 날, 내가 아침에 출근하는 선생님들의 신발 정리를 하게 됐을 때였다.
들뜬 마음으로 신발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는데,
한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너 남자애 아니야? 남자가 왜 이런 일을 해?”
순간, 그 말 속에 담긴 묘한 경계를 느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주변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성적이 좋고 말 잘 듣는 여자아이들에겐
자신들의 책상 정리나 꽃병에 물갈기 같은걸 맡겼고,
남자아이들에겐 교재를 옮기거나 조개탄, 급식 통을 나르게 했다.
나는 남자처럼 생겼지만, 남자는 아니였으니 힘이 약했고,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깔끔하고 야무진 여자아이는 또 아니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나눈 경계밖에서 구경만 하는 아이였다.
5학년 쯤인가, 나는 구경꾼에서 갑자기 주인공이 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 여자애 둘이
갑자기 우리 집에 놀러 오겠다고 했다.
그 아이들과 수다 떨며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신났고,
엄마도 “이렇게 예쁜 친구들이 있었냐”며 부침개를 해주셨다.
그날따라 노랑색 장판이 반질반질하게 닦여 있어서 더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다음 날 5교시가 되자,
우리 집에 놀러왔던 애 중 하나가,
교탁 앞에 서더니 말했다.
"진영이네는 방 하나에 다섯 식구가 산대. 화장실도 공동 푸세식이야.
쌀은 진영이를 줘야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 분함, 창피함이 섞여서 눈물이 쏟아져
고개를 푹 숙이며,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공책이 눈물에 젖어 겉표지가 우글우글해졌다.
알고보니, 담임은 반 아이들에게 집에서 쌀을 조금씩 가져오라고 했었고,
그 쌀을 불우한 이웃에게 나눠주기 위해
몇몇 아이들에게 사전 답사까지 보냈던 것이다.
불우한 후보가 몇 명 더 있었지만, 만장일치로 내가 받게 되었다.
정말 이 방법밖에 없는걸까.
걔네는 스스로 자랑스러웠을까?
진영이를 도와줘서 뿌듯했을까?
울고 있던 내게 담임이 다가와 말했다.
“이게 울 일이냐? 애들이 너 도와주겠다고 쌀을 모았잖아”
“고맙게 생각해야지”
대로변에 있는 학교에서, 흑석동 제일 높은 끝자락, 달동네,
거기에서도 제일 높은 곳까지,
나는 뒤로는 책가방을 메고, 앞으로는 쌀을 안아들고
하염없이 오르막길을 걸었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땅을 봐야 한다,
자꾸 어디 까지 왔나 고개를 들면, 그 길이 더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울음은 꾹 삼켰다.
쌀에 눈물이 떨어지면 안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