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참외

by 맑음

여름이였고, 장마철이였나보다.

늦은 밤, 비가 내렸고, 아빠가 우산을 가지고 내려오라고 전화를 했다.

집에 전화가 없었으니, 주인집 전화로 왔던 것 같다.


비오는 밤 '똥고개'를 다시 내려가는 건 너무 무서웠다.

경사가 심해 똥차가 올라가다 엎어졌다고 해서 똥고개라고 부르던 오르막길은

여름 대낮엔 땀이 비오듯이 걸어 올라야 끝났고,

내려갈 땐 속도가 붙어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드문드문있던 가로등 덕분에 밤이 되면, 더 무서웠다.


언니도, 후남이도, 나도 서로 안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미루다가 결국 엄마에게 혼이났고,

미루기의 끝에는 거의 내가 있었다.

언니는 맏이고, 후남이는 막내니까.


우산을 쓰고 내려가니,

아빠는 이미 화가 날 대로 나 있었다.


"왜 이제야 기어나와!"


두손으로 꼭잡은 우산을 번쩍 들어 아빠에게 씌워주니,

확 집어던지고는,

욕을 뱉으며, 혼자 올라가버렸다.

데구르르 굴러간 우산을 다시 주워 쳐다보니,

아빠의 한 손엔 참외가 가득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무겁지? 같이 들까?”


조심스레 물어봤지만,

아빠는 차갑게 나를 노려보며,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아빠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부엌에 참외를 쏟아버리더니

구둣발로 그것들을 짓밟았다.


" 처먹을 자격도 없는 년들! 개썅년들!

“애비가 무겁게 들고오면 얼른 나와 받아야지!!"


엄마가 “아깝잖아, 왜 그래!” 하며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다음 날 양푼에 담긴 조각난 참외들을 보면서

나는 부엌에서 소변을 봤다.

공동 화장실을 쓰는 게 불편해서

우리는 종종 부엌에 볼일을 봤다.


부엌이자 화장실인 그 바닥 위엔

참외의 씨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못 먹는 줄 알면서도,

껍질만 깨지지 않았다면

깎아서라도 먹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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