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1505호] 2장, 애틋하고 찬란했던

by she

<안녕 1505호>

-2장, 애틋하고 찬란했던


친구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현관으로 향하는 길, 반지를 팔러 가는 길인데 정작 반지를 두고 나갈 뻔했다. 이제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반지다. 어떻게 가지고 갈까 고민하다 손가락에 끼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생각되어 별생각 없이 꼈다.

밖으로 나오니 날이 좋아서, 햇빛이 찬란해서, 마지막으로 낀 반지가 반짝였다.


지금 살고 있는 나의 집 뒷산을 지나 부모님 집을 지나서 오래전 나의 집이었던 1505호가 있는 동네에 도착했다.

1505호로 가기 전 내가 아꼈던 장소인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공원으로 갔다.

이곳에 살 때 틈틈이 산책 나왔던 곳으로 이후에도 자주 방문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저릿해 예전만큼 자주 오기 어려워졌던 곳이다.

날이 좋아서였을까 평소보다 더 반짝이는 모습으로 나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는 더 많이 자랐고, 오래된 나무 위에 새로운 나무도 자라고 있었다. 초록초록한 잎과 풀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따뜻하게 햇볕을 받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멍하니 쳐다보게 되었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혼 후 이 나무를 만나고 처음으로 저릿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무가 아름다워서 였을까, 옆에 친구들이 든든하게 함께 있어줘서 였을까. 아니면 두 마리의 고양이가 나의 혼을 쏙 빼놓아서 그런 것일까.

어떤 이유였든 오늘의 기억으로 인해 나는 이곳이 새로운 감정이 덮어졌을 것이다.

또 저릿해질 수도 있겠지만, 오늘의 이 따뜻함도 함께 기억나겠지.


은행나무를 뒤로하고 1505호를 마주하러 길을 걸었다.

가는 걸음이 긴장되고 떨렸다. 내가 어떤 감정과 마주하게 될지 나도 모르겠기에 두려웠다.

매일 같이 다니던 마트가 없어진 것을 보며 씁쓸했고, 여전히 느린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며 긴장했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 제일 꼭대기 층, 내리면 창문에서 집 앞 학교 운동장이 보인다. 여기에 살 때 이 창문을 통해 운동장에서 뛰노는 학생들을 보는 것이 참 즐거웠었다.

이제 1505호로 가는 길, 1508호, 7호, 6호의 문패들이 바뀐 것을 보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리고 1505호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순간 나는 저릿했다. 내가 살던 때와 변함없는 문패와 초인종을 보며 이 집과 마지막으로 인사하던 그날, 수시로 다녔던 나날들, 처음 인사했던 날이 빠르게 머릿속을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울컥한 마음에 빠져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문에서 눈을 떼고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시선을 돌려 아파트 밖 풍경을 보았다.

그 순간 다시 한번의 저릿. 내가 참 좋아하던 풍경이다.

큰 아파트 단지였지만 1505호 문을 열고 나오면 산이 보였다. 그래서 이 집을 좋아했다. 낮에는 낮이라서, 저녁이면 저녁이라 예뻤다.

더 이상 무언가 말하기를 멈추고 그냥 좀 바라보기로 했다.

이제 실컷 봤다는 생각이 들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한 친구 눈에 눈물이 고여있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덕분에 편안해져서 친구 탓을 하며 나도 좀 울었다. 그리고 마음으로 1505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고 있구나. 고마웠어’.

별거 후 집을 정리하고 나올 때 집만 혼자 두고 나오는 거 같아서, 집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 마음이 아팠었다. 내심 그게 계속 마음에 있었나 보다. 인사를 나누고 나니 조금은 개운해진 마음이었다.


이제는 반지를 팔러 간다. 드디어 반지를 팔러 간다.

반지와는 이미 작별의 인사를 여러 번 해서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다만 금을 팔아본 경험이 없어서 보통의 금은방에서 이 반지를 사줄까라는 걱정이 있었다. 물론 금을 산 것도 이 반지를 샀던 경험밖에 없다.

그나마 결혼반지를 사본 경험이 있는 나와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 4명이 함께 아무런 정보 없이 동네 금은방을 찾아갔다.

조심스럽게 "이 반지 팔고 싶은데요."라고 이야기하니 금은방 사장님께서 일사천리로 착착착 진행해 주셨다. 로즈 골드라 일반 골드보다 금값이 낮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결혼 반지에 있던 아주 쪼매난 다이아(그 시절에는 참깨 다이아라고 불렀다)가 큐빅이라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었고, 결혼 반지를 맞췄던 종로 금은방이 화르르 지나갔다.

뭐 이제 와서 어쩌겠나. 보증서를 잃어버린 것도 나고, 로즈 골드로 맞춘 것도 나고, 그 시절 내가 반지를 팔 거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반지는 쿨거래 되었다.

반지가 팔린 것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반지를 마지막으로 제대로 한 번 못 본 것도 친구들이 말해줘서 알았다.

금은방에 도착해서 반지를 팔겠다고 손가락에서 반지를 뺀 다음부터 나는 그 몇 시간 사이에 남은 내 네 번째 손가락의 반지 자국에 계속 눈이 갔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작은 반지 하나도 이렇게 자국을 남기는데 그 오랜 시간은 나에게 얼마나 깊고 많은 자국을 남겼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저녁 장을 보고 집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리며 머리가 아파졌다. 잠시 침대에 누웠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아팠던 머리가 괜찮아져서 일어나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핸드폰을 잡으려 뻗은 손가락에는 어느새 반지 자국이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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