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연애나 결혼상대를 고를 때 유머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들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유머코드가 맞아야 하지만 유머코드'만' 맞으면 안 된다. 유머코드도 눈물코드도 분노코드도 하다못해 '화'의 해소 타이밍조차도 잘 맞아야 한다.
나는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 하는 사람으로, 세상에 나와 100% 맞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와 결이 맞는 사람도 분명 있다. 일부 안 맞는 부분은 내가 평생을 눈감아 줄 수 있다고 용인할 수 있을 정도의 범주여야 한다.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다름이라면 오래가기 어렵다고 본다. 내가 웃을 때 왜 웃는지, 울 때 왜 우는지, 화날 때 왜 화가 났는지, 하다못해 왜는 몰라도 들을 자세는 갖출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고.
여러 가지 중에서 나는 '화'의 해소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화날 때 이 상황을 지나가 버리면 왜 화났는지, 얼마나 화났는지 상황 설명도 어렵고 곱씹을수록 화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금 당장 이 감정을 해소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잠깐이라도 물리적 거리를 두고 감정을 가라앉히고 나의 감정도 상대방의 감정도 소화가 되어야지만 해소가 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남편과 만나고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싸우지 않는 게 자랑도 아니고 잘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남편과 나는 둘 다 잠시간 머리를 식히고 대화로 화를 푸는 편으로, 운이 좋게도 이 '화'의 해소 타이밍이 잘 맞을 뿐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둘 다 흩어지는 거지. 기본적으로 둘 다 화가 거의 없는 편이지만 내가 화나 있으면 잠깐 혼자 있을 수 있도록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곳이라도 나갔다 오고, 반대의 경우에도 남편이 감정이 요동치면 내가 아이를 보고 잠깐 머리를 식히고 쉴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그 후에 말할 준비가 되면 그때 왜 화가 났는지(혹은 나조차도 이유를 모르겠으면 화가 나는데 이유가 없어서 더 화가 났다고라도 말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상대에게 시간을 내어준 것에 대해 고마움도 전한다. 싸우는 것도 좋다. 공격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다 꺼내서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내야 한다. 마음속에 꾹꾹 욱여넣은 것은 해결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이 타이밍이 안 맞는 사람들인데, 한쪽은 시간이 필요한데 다른 한쪽이 당장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면 그때는 파국이다. 결혼 전에 힘든 여행 코스를 다녀와야 한다는 둥의 말들도 내 생각엔 이걸 알아보기 위함이 아닌 가 싶다. 사람은 편할 때 보다 힘들 때 좀 더 포장되지 않은 날 것을 보여주기도 하니까.
싸움을 키우지 않으려면 내 생각엔 이 '화해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내 기분만 몰아붙인다면 싸움은 커진다. 내 오랜 친구 둘은 정말 성격이 양극단에 있어서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오래 만날 수 있었나 의아할 정도이다. 친구 A는 먼저 마음을 가라앉혀야 이야기가 가능하고, 친구 B는 먼저 이야기를 해서 이 상황이 이해가 되어야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타입이다. 난 따지자면 중간인데 둘은 거의 서로 언어가 다른 느낌이라 내가 마음 통역사 역할을 해준다. 지금부터는 제삼자인 내가 보는 친구 이야기로 본인의 마음과는 다를 수 있다. A는 감정이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스타일로 나의 이 기분을 설명해주고 싶은데 눈물이 먼저 터져 나와 말이 턱턱 가로막히는 편이다. 그러나 화에 담긴 그 내용은 상대에 대한 비난과 폭주라기보다는 그저 내 이 속상한 마음을 조금만 알아달라는 것뿐이다. 터져 나온 용암이 식고 나면 그 형태를 말할 수 있는데, 당장은 밀고 올라오는 마그마를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상황. B는 표현은 도리어 잔잔한 편으로 말은 나긋나긋하는데 방식은 거의 불도저라서 본인이 납득이 되고 의문이 해소될 때까지 물어본다. 거의 챗GPT에게 프롬프트 입력하듯 정교하고 정돈된 단어로 입력을 해줘야 이해하고, 두루뭉술한 표현을 쓰면 말은 '어-'하는데 이마에 모래 한 톨만큼도 이해 안 됐다고 쓰여있다. 마치 예쁘게 아스팔트를 깔아야 하는 불도저처럼 지금 이 재료가 식기 전에 정확한 방향, 각도, 두께로 깔아야 하는 것이다. 이 친구도 방식이 불도저일 뿐, 거기에 담긴 마음은 내가 지금 정확하게 이해해서 다음번엔 상대방에게 같은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것에 있다. 정말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면서도 이다지도 안 맞을 수 있는지 '애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딱 어울리는 관계도 더없다.
내가 상대방을 오래 보고 싶다면 싸울 때 상대방의 방식을 잘 이해해야 한다.
내가 지금 당장 말을 할 수 없다면 입 꾹 다물고 있는 게 능사가 아니라 내가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을 고를 때까지 시간을 좀 달라고 말하자. 반대로 내가 지금 당장 말을 해야겠어도 생각나는 대로 다 뱉지 말고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됐는지 물어보자. 상대방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내 얘기를 들을 수는 있는지 물어보고 말하자.
오은영 선생님도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최고의 공감은 잘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최고의 공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