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소비되고 있다

토마스 레온치니의 ‘액체 세대의 삶’을 가로지르며-

by 엉클디

우리는 물처럼 흐르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어느 순간 고체였던 것들이 액체로 변해가는 과정을, 단단했던 관계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각을.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처럼 서로를 향해 미끄러지다가, 결국은 하나의 물줄기가 되어 흘러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우리는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우만이 말한 '액체 근대성'의 풍경이라는 것을.


창밖을 바라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서울의 한 카페 창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건물들은 저마다의 색과 형태로 도시의 풍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건물들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특히 젊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제 또래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이고, 더 쉽게 연결되고, 더 가볍게 헤어지는 듯했습니다. 잘파, Z세대라 불리는 이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사랑하고, 소비하고, 행복을 찾고, 불안해하는 방식은 제가 알던 세계와는 다른 질서로 작동하고 있다고.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는 것, 그것은 이제 얼마나 다른 의미가 되었을까요. 과거의 손잡음은 약속이었습니다. 오래도록 함께 걷겠다는, 쉽게 놓지 않겠다는 다짐. 그러나 지금의 손잡음은 어쩌면 일시적인 접촉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마치 유리잔에 담긴 물이 다른 잔으로 옮겨지듯, 흘러가는 것을 전제로 한 만남입니다.


카페를 나와 거리를 걷다가 눈에 띈 간판들.

'팝업 스토어'

'공유 오피스'

'단기 렌탈 스튜디오'

이 공간들은 마치 바우만과 레온치니의 말을 직접 구현해놓은 듯했습니다.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을 전제로 설계된 공간들. 짧은 호흡의 만남과 이별을 수용하는 건축적 장치들. 이곳들은 단단한 벽돌로 지어졌을지언정, 그 안에서 일어나는 관계는 물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물처럼 흐르는 세상에서, Z세대는 어떻게 사랑하고 있을까요? 그들은 앱을 통해 만나고, 메시지로 대화하고, 인스타그램으로 서로의 일상을 들여다봅니다. 그렇게 형성된 친밀감은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깊어지고, 때로는 충격적일 만큼 쉽게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바우만이 '액체 사랑'이라 부른 현상입니다. 손가락 하나로 시작되고 손가락 하나로 끝나는 관계.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순간 시작되고, 차단 버튼을 누르는 순간 끝나는 연결.


그런데 이러한 사랑의 방식이 공간에도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그곳에는 '일시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팝업 스토어는 영구적이지 않음을 전제로 합니다. 공유 오피스는 소속감보다는 필요에 따른 접근성을 강조합니다. 에어비앤비는 집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조차 임시적 경험의 대상으로 전환시킵니다. 이런 공간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오래 머물지 마세요, 곧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 테니까요"라는 속삭임일지도 모릅니다.


물이 담긴 그릇을 기울이면, 물은 흘러내립니다. 그것은 물의 본성입니다. 마찬가지로 액체화된 관계는 경계를 넘어 확장되고, 때로는 증발하기도 합니다. 중력의 법칙처럼 확실한 것은, 그것이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뿐입니다. 레온치니가 말한 '액체 세대'의 특성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연결을 갈망하면서도 구속을 두려워하는, 접촉을 원하면서도 침투를 경계하는 양가적 감정.


그런데 이렇게 액체화된 관계는 자본주의적 논리와 만나면서 또 다른 양상을 띠게 됩니다. '소비와 관계'라는 두 개념이 서로를 침투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인간관계조차 하나의 상품처럼 다루게 됩니다. SNS에서 누군가의 계정을 '구독'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취소'하는 행위. 그것은 마치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제거하는 것과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합니다.


이런 소비적 관계의 논리가 물리적 공간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브랜딩 공간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경험'을 판매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상품을 소비하는 동시에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자체가 또 다른 소비의 대상이 됩니다. 커피 한 잔의 가격에는 그 공간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사진을 찍고, SNS에 공유하는 모든 경험의 가치가 포함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소비되는 관계들 사이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이상하게도 불안과 공존합니다. 명상 앱이 인기를 끄는 동시에 불안장애로 고통받는 젊은이들이 증가하는 역설. 힐링을 표방하는 공간들이 넘쳐나는 동시에 그곳에서조차 SNS에 올릴 완벽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 이것이 바로 '행복과 불안'이 뒤섞인 현대의 풍경입니다.


공간은 이러한 이중적 감정을 교묘하게 활용합니다. 한편으로는 '힐링'과 '안정'을 제공하는 피난처로 자신을 포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무대장치로 기능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카페나 레스토랑, 심지어 미술관조차도 포토존을 갖추는 것이 필수가 되었습니다. 마치 경험하는 것보다 그 경험을 증명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듯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액체적 경험이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의 양극화'라는 마지막 아젠더에 도달합니다. 유동적 삶을 살아가는 자유는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 기술,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전제로 합니다. 도시의 특정 구역은 점점 더 '핫 스팟'으로 변모하여 문화자본과 경제력을 가진 이들의 놀이터가 되는 반면, 나머지 공간들은 점점 더 소외되고 있습니다.


강남의 한 카페에 앉아 제주도의 에어비앤비를 예약하며 런던의 팝업 스토어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런 경험 자체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공간적 양극화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실제로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대신, 그들을 더 먼 곳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그러나 자본과 정보의 흐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풍요로운 곳으로 더 많이 흘러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액체 근대 사회에서 양극화는 더욱 심화됩니다. 유동성이 높은 자본과 정보는 경계를 쉽게 넘나들지만, 그 혜택은 불균등하게 분배됩니다.


사랑이 액체처럼 흐르고, 관계가 소비되며, 행복과 불안이 공존하고, 사회가 양극화되는 이 시대에, 공간디자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단순히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고 촉진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책무일까요? 아니면 더 깊은 윤리적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까요?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처럼 흐르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유연하되 영속적인 가치를 품은, 개방적이되 친밀함을 포기하지 않는, 접근성이 높되 소외시키지 않는 그런 공간. 그것은 마치 강과 같아서, 끊임없이 흐르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주변의 생태계를 풍요롭게 하는 공간일 것입니다.


창가에 앉아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니,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시작되었지만, 조금씩 움직이면서 서로를 향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물줄기가 되어 함께 흘러내렸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우리 시대의 초상 같았습니다. 개별적이면서도 연결된, 유동적이면서도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액체화된 세상에서 공간디자인의 역할은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흐르되, 서로를 만나고 함께 흘러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일시적 만남이 영구적 기억으로 전환될 수 있는 순간을 설계하는 것. 소비의 논리에 포획되지 않는 진정한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행복을 찾되 불안에 잠식되지 않는 균형점을 제안하는 것. 그리고 모든 이들이 그러한 경험에 접근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모색하는 것.


우리는 물처럼 흐르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항상 가장 쉬운 길만을 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바위를 뚫고, 때로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때로는 지하로 스며들어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합니다. 액체 세대의 사랑과 삶, 그리고 그것이 펼쳐지는 공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단순히 흐르는 것을 넘어, 어떻게 흐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유리창의 물방울들이 이윽고 모두 흘러내리고, 새로운 빗방울들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순환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흐르고,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그 춤의 무대로서, 공간은 우리의 액체적 존재 방식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그것을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캔버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에는 형태가 없지만,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액체화된 관계와 경험은 그것이 펼쳐지는 공간의 형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렇기에 공간디자인은 단순한 기술적 과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존재 방식과 관계 맺기에 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철학적 실천이 됩니다.


액체 세대의 공간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물처럼 흐르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흐름을 만들어갈 것인지.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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