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르지 않음으로써, 마음을 일으킨다

응무소주 이생기심과 탈인간 네트워크 시대의 공공디자인 이야기

by 엉클디


당신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나요?


이 질문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묻는 게 아닙니다. 존재의 상태, 사유의 질감, 실천의 위치를 묻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떠오르는 것’과 ‘지워지는 것’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장소는 서버가 되고, 모든 존재는 노드가 됩니다. 인간은 더 이상 디자인의 중심이 아닙니다.

이 전환의 기로에서, 저는 한 구절을 붙듭니다.


應無所住而生其心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그 마음을 일으키라.


『금강경』의 이 구절은 단지 종교적 명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네트워크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디자이너가 마주해야 할 철학적 명령이자 우주적 리듬입니다.

자연은 결코 고정되지 않습니다

바람은 잠들지 않고, 물은 정주하지 않으며, 별조차도 궤도 위에서 움직이며 사라집니다.


철학자 시몽동이 말한 “개체화”란 고정된 완성이 아니라, 생성과 변형의 과정입니다. 생명은 자기 스스로 조건을 형성하고, 관계를 재배열하며 존재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공공디자인이 진정 ‘자연과 공명한다’고 말하고 싶다면, 그것은 형태를 구축하는 일이 아니라 생성의 조건을 조율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응무소주는 바로 이 무형의 리듬과 일치합니다. 머물지 않음은 비실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감응하고 공진하며 살아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공공디자인은 이 무형의 생성성을 공간에 임시적으로 표상하는 감응의 예술이어야 합니다.


디자인은 누구의 손에 있을까요?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인간만을 위한 디자인을 말할 수 없습니다.

사회학자 브루노 라투르는 “비인간 행위자”를 주장했습니다. 디자인의 과정 속에는 사람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센서, 공기, 열, 광, 데이터, 기계, 짐승, 조류, 바이러스까지도 모두가 동등한 ‘행위자’로 작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는 단순한 생태학적 감수성을 넘어서는 정치적 사유입니다. 디자인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는 기술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재배열에 참여하는 철학적 실천입니다.


공공디자인은 이제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어떤 관계의 조건을 조성할 것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으로 이행해야 합니다.


디자인은 더 이상 ‘대상’이 아닙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세 가지 공간적 실천을 제안합니다.


1. 플루이드 거주지(Fluid Habitat)

건축은 콘크리트가 아닙니다. 디자인은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기후, 인구 이동, 센서 데이터, 생태 흐름이 실시간으로 변주되는 움직이는 인터페이스여야 합니가.

스마트시티의 진정한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공간이 끊임없이 자기를 수정하는 능력”입니다. 플루이드 거주지는 바로 응무소주의 실천적 형식입니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음으로써, 모든 변화에 생기 있게 반응할 수 있는 공공장소의 탄생입니다.


2. 비인간 권리장전(Non-human Charter)

공공디자인은 이제 사람을 넘어서야 합니다. 건축물이 조류의 이동경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길바닥이 지렁이의 생존 조건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공공’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공공디자인의 첫 페이지에 비인간 존재들을 위한 ‘권리장전’을 써야 합니다. 이것은 윤리이자 기술이며, 공존의 언어를 설계하는 디자이너의 새로운 책임 선언입니다.


3. 순환·재생적 디자인(Circular & Regenerative Design)

무위(無爲)는 게으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의 속도를 닮은, 소멸을 수용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다시 생성될 수 있는 구조만을 선택하는 용기입니다.

공공디자인은 더 이상 도시의 영구적 기념비가 아닙니다. 그것은 데이터와 감정과 쓰임이 되돌아갈 수 있는 구조로서, 시간과 공간을 무주적으로 통과하는 생기의 흐름입니다.


머무르지 않는 윤리


응무소주는 윤리입니다. 그것은 ‘형태의 반복’을 거부하고, ‘관계의 재정렬’을 끊임없이 요청하는 비가시적 존재의 윤리입니다.

디자인은 이제 고정된 주체성을 포기하고, 대상 중심 사고를 넘어서고, 역할과 감응의 순환으로 이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장소를 짓는 것이 아니라, 장소-되기의 조건을 짓습니다. 우리는 의미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생겨나는 리듬을 설계하는 거죠.


근미래의 디자이너들에게 보내는 여섯 개의 메시지


1. 머물지 말라. 공간, 정의, 역할에 안주하지 마라.

2. 연결하라. 인간, 비인간, 비물질의 세계를 가로질러라.

3. 되돌려라. 자원도, 감정도, 기억도 다시 흐르게 하라.

4. 공명하라. 기술과 전통, 데이터와 감각이 동시에 울리게 하라.

5. 무위로 창조하라. 형태를 통제하지 말고, 생성을 유도하라.

6. 청취하라. 공간은 말한다. 다만 당신이 듣지 않을 뿐이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생성되는 길을 설계하라


“응무소주 이생기심.” 이 한 문장은 동아시아 철학의 깊은 통찰이자, 디자인이 존재론으로 이행하는 거대한 다리입니다.

이제 디자이너는 창조자가 아닙니다. 그는 중계자이자 조율자, 공존의 리듬을 감지하는 청각적 존재입니다.


디자인은 더 이상 무엇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스스로 생성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자만이 감각할 수 있는 심연의 윤리이자 우주의 리듬입니다.


당신이 디자이너라면, 더 이상 만들지 말고, 묻기 시작하세요. 그 마음이, 바로 생기심입니다.


정형원 (미술학 박사 · 디자인인문학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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