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16 꿈
지난번 꿈을 꾸고 한 달이 한참 지난 후 꿈이다. 그사이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마을 이주까지 내면에선 많은 일들이 있었으리라!
고향동네이다. 낯선 남자가 이 마을에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라 한다. 소를 키우던 동네 아저씨에게 공장을 지어줄 테니 공장을 운영하라고 한다. 평생 소만 키워 온 사람에게 축사대신 공장을 지어주면 어떻게 경영하냐며 걱정을 한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한다는 뜻을 비춘다.
이번엔 마을을 이주해야 하는데 공장 때문이 아니라 마을 용도 변경으로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어 모두 떠나야 한다고 소식을 전한다. 몇몇 사람들은 안된다고 반대하지만 곧 순응한다.
대홍수로 세계가 물에 잠기듯 사라진 마을을 보기 위해 나는 잠수해 들어간다. 주위를 둘러보다 우리 집인지 아닌지 모를 어느 집을 보고 있다. 내 옆의 다른 사람은 집을 보더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펑펑 운다. 나는 집도, 그 사람도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장면이 바뀐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더니 교회마당에서 서로 마지막 인사를 한다. 모두들 입술을 떨며 눈물을 훔치고, 몇몇은 나에게 와서 애틋하게 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와 옛날일을 감상하듯 그들과 감정의 틈을 좁히지 못한 나는 이 모든 걸 참관하며 지켜보는 입장이다. 민들레 홀씨 날아가듯 모두 뿔뿔이 흩어져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
갑자기 '펑'소리가 들리고, 교회 바로 앞 우리 집에서 가스폭발이 났다. 가스통이 놓여있던 벽 하나가 말끔히 사라지고, 내 속을 뒤집어 보이듯 부엌 내부가 훤히 보인다. 사람들이 가서 수습한다. 엄마가 정신이 없어 가스불 끄는 걸 껌벅했나? 하는 생각에 걱정된다. 내가 엄마에게 '떠나는 마지막 날이어서 긴장이 풀렸나 보다'라고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살아낸 과거에 마음을 두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 느슨해지는 그때, 어느 한편 아직 웅크리고 있던 마지막 응어리를 터뜨린 것만 같다. 마치 떠나기 전 꼭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헤어질 때 모두 빈 손이라 물건을 왜 안 챙겨가냐고 묻는다. 이주를 담당하는 누군가가 새로운 곳에 집도 다 마련해 놓았고, 미리 이사도 해 놨다고 한다. 내가 이사 갈 곳도 다 마련돼 있다는 느낌은 있지만 그곳이 어딘지 아직 모르고 있다.
내가 나고 자란 산속에 갇힌 조그만 마을, 이웃들, 교회라는 장소 그리고 아담한 자연. 나의 정체성에 영향을 준 외부 세계이다.
이 고향 속에 자리한 내 집은 내가 태어나기 전 수많은 한과 아픔들로 살아낸 나의 부모님의 기운으로 가득 찼고 , 내가 태어나고부터는 그 기운들과 가족 안에서 만들어진 역동성, 신앙은 내 정체성을 촘촘하게 만들어 갔다.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소 한 마리는 큰 재산이었다. 예로부터 농사일에 소는 없어서는 안 될 가축이었다. 꿈에서 소는 전통이고 옛 가치관이다. 그것은 나를 옭아매어 숨 막히게 했던 것들이다.
공장은 옛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산업이다. 낯선 남자는 소만 키우던 사람에게 공장을 운영해 새로운 상품들을 창조해 내라고 한다. 때가 되어 낡은 것은 버리고 용도 변경 할 순간이 왔지만, 너무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나의 무의식은 급격한 변화에 저항감을 드러낸다.
그래서 꿈은 극단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마을을 물에 잠기게 하는 것이다. 왜 불이 아닌 물일까?
분노로 마을을 파괴하는 불이 아니라 물은 신화의 대홍수처럼 새로운 출발을 하게 만드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물은 감정, 무의식을 나타낸다. 물속에서 잠긴 마을을 그저 담담히 관찰하는 나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다. 자아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옆에서 펑펑 울고 있는 사람 또한 나이다. 그 모습은 내 안에 아직 남아있는 상실감에 대한 애도과정이다. 우리 둘은 나란히 있지만 나는 울고 있는 사람과 합류하지 않는다. 예전의 나는 곧 슬픔 그 자체였지만, 이제는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다.
교회는 실제 내 고향에서 신앙으로 마을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공동체의 장소이다. 신앙은 나를 힘들게 했지만 교회라는 장소는 긍정적인 면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교회로 모인 사람들과 이별은 나를 구성했던 모든 요소들과 이별을 뜻한다.
그들이 나에게 와 애틋하게 나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고 나를 보내준다. 나의 옛 방식들은 나를 원망하지 않고 애틋한 마음으로 잘 가라고 보내주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감정을 같이 느끼지 못하는데, 그것은 이미 내가 그 과정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도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같이 손을 잡으며, 서로 각자의 길로 진짜 이별을 한다. 그들이 이주할 집들이 다 마련되어 있어, 나에 대한 미움 없이 그들은 무의식 속으로 잘 흩어질 것이다.
나의 세계인 마을이 물에 잠긴다면, 마을 속에 있는 내 집은 가스폭발로 한 벽이 무너진다. 가스폭발은 긴장이 풀어진 순간 그동안 내 안에 축적되고 억눌린 감정들이 폭발한 것이다. 부엌은 생존을 중요한 요리를 해 영양분을 공급하는 장소이다. 여성의 공간으로 돌봄과 양육에 대한 내부 구조이다. 폭발의 원인이 엄마인데, 엄마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삶을 유지해 온 엄마의 기능이 다한 것이다.
벽이 허물어 짐으로 훤히 드러난 부엌 내부. 이는 살아내느라 힘들었던 돌봄과 희생의 영역이 안전하게 방출되고, 더 이상 가릴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집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것은 내 정체성이 건강하다는 뜻이다. 파괴가 아니라, 더 이상 마음을 두지 않고 옮겨 갈 수 있도록 한 벽만 무너뜨린 것이다.
다시는 마을로도,
집으로도 돌아올 수 없도록.
나는 이제 물에 잠긴 마을을 뒤로하고, 어딘가에 마련되었다는 새 집을 향한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빈손이라 가볍고, 돌아갈 곳이 없어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