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갔다 거기로, 너와 함께 가서 더 좋았다 # 12
아직은 어리고, 아직도 계속 젊었던 나이일 땐 하늘이 파랗고, 바다가 파랗기 때문에 그 파랑,
그 파란 기억들이 별로 슬펐던 적 없었다. 파랗다는 건 명랑이거나 희망. 그랬으니까.
얼마나 좋나. 저 파란 하늘과 저토록 새파란 바다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게 파랑이란 어쩐지 슬픈 빛깔 같아졌다.
그 영화 [베티 블루 37.2] 속에서 만났던 처연함 같은 것... 그러니까 슬픔의 블루, 그렇게 되었다.
“엄마가 포르투에 오기 전에 조사를 해 봤어.”
“무슨 조사를 했지?”
“아줄레주! 포르투의 파란 그림들!”
“저런! 아무도 모르는 아주 중요한 조사를 하셨습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요.”
“놀리니?”
“그럴 리가요!”
어디나 파란이었다. 어딜 가도 파랑이 있었다. 거기, 포르투에는.
아줄레주. 파란 그림 아줄레주. 포르투의 역사 속에 남아 있는 파랑파랑한 것들.
아줄레주란 말은 ‘작고 아름다운 돌’이라는 아랍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
포르투갈의 왕이었던 마누엘 1세가 스페인의 알함브라궁전에 다니러 갔다가 그만, 독특한 문양의
장식 타일에 푹 빠져서는 자신의 왕궁에 옮겨다 놓게 된 것이 시작이라고 했다.
바람이 불 듯 그 파란 그림이 번져나갔댔다. 포르투갈 그 어디든지로.
겨우 타일 한 장 또 한 장 그랬을 건데, 파란 그림이 그려진 타일이었을 건데,
그것이 발효되고 부풀어서 한 나라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어느 집의 담벼락, 어떤 상점의 벽, 창문의 테두리이거나 밟고 다니는 길바닥 위에도 아줄레주.
그것은 마치 전염병처럼 수없이 퍼져나간 모양이었다.
전 세계의 기차역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역으로 꼽힌다는 상 벤투역에 이르렀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와! 그랬다. 뭐야, 여기 뭐야. 이렇게 우아할 수가 있다는 거야?
“어머니, 침 닦으셔야겠습니다.”
“됐어. 조용히 해.”
“예에. 그럽지요.”
수도원을 개조해 만든 역사였다. 아주 오래 전, 불이 붙어 폐허가 된 성 베네딕토 수도원을
당대 최고 건축가와 화가가 힘을 모아 이토록 아름다운 기차역으로 꾸몄다, 그랬다.
불행을 딛고, 슬픔을 이기고서 드디어 블루! 찬란하게도 블루인 아름다움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이
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쁘다.”
“예에. 이쁜 그림입니다.”
“아니, 그림도 그렇지만 절망의 순간을 디디고 다시 만든 이런 게 이뻐.”
“철학자이십니다.”
“고맙다.”
이제 여기는 성당. 산타카타리나 거리를 걸으며 만났던 알마스성당. 온통 파랑의 향연.
하늘도 파랗고, 그림자도 파랗게 물든다. 그래서인지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음도 파란 것만 같았다.
그 커다란 벽 앞에 서서 아이에게 주문했다.
사진을 좀 찍어 달라고.
죽을 때까지 여기를 안 잊도록 사진으로 남겨 달라고.
이 말을 할 때 내 마음은 아주 비장했는데
아이가 나를 마치 파란 벽에 붙은 바퀴벌레처럼 찍어 놓았더라.
돌멩이 하나에도 숨이 있고, 세월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포르투에서 만난 블루블루한 이야기들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아이는 블루 앞에서 멋있네, 그랬고
나는 블루 앞에서 왠지 슬프다 그랬었는데...
그것도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거였다.
아직은 파란 너와 여전히 파랗고자 하는 나의 이야기.
“역시 블루는 좀 우울해.”
약간의 한숨을 섞어 아이한테 말했더니 걔가 그랬다.
“어우! 파랑은 그냥 파랑이지요. 그러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십시다.”
괜한 상념에 젖어 쓸쓸하게 파래졌던 내 머릿속을 아이의 한 마디가 빗자루질해 쓸어 냈다.
그래, 헛소리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 다음 회에 계속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