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중국의 제후국과는 뿌리가 다른 나라
태종 16년 6월 1일, 변계량은 극심한 가뭄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태종에게 직접 하늘에 제사를 올릴 것을 상소하였다. 조선은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에서 제후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원칙적으로 제후는 산천에만 제사를 지낼 수 있고 하늘에 제사하는 것은 천자만의 권한이었다. 그러나 변계량은 지금과 같은 위기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국가의 존망이 달린 비상사태이므로, 원칙을 넘어 하늘에 직접 제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더 근본적인 논거로 조선이 중국의 제후국과는 뿌리가 다른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변계량은 “우리 동방은 단군이 시조인데, 단군은 하늘에서 내려온 분이지 중국 천자가 봉해준 제후가 아니다”라고 선언하였다. 이는 조선의 건국 이념이 중국 황제로부터 부여받은 ‘제후’라는 정치적 지위에 국한되지 않고, 훨씬 오래되고 신성한 ‘천손(天孫)의 후예’라는 독자적 정체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었다. 곧 조선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라는 외교적 현실과는 별개로, 하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정신적·제의적 독립성을 지닌 존재라는 인식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조선을 중국 중심의 위계질서 속 단순한 주변부로 보지 않고, 하늘의 명을 직접 받은 독립된 세계로 보는 관점이었다. 동시에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던 태종에게 변계량의 논리는 왕권 강화와 민심 결집을 위한 좋은 명분이 되었다. 조선의 왕이 명나라 황제와 마찬가지로 하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은, 왕의 권위를 제후적 지위에서 벗어나 신성한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제후국의 격식을 깨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파격적 의식은 단순한 종교 행위를 넘어, 조선이라는 나라의 특별함을 만방에 과시하는 최고의 정치적 이벤트가 될 수 있었다. 변계량의 상소는 조선 전기 국가의례 논쟁 속에서 단군을 ‘하늘로부터 직접 명을 받은 시조’로 재해석하며 국가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문헌이다. 이는 조선의 독자적 정체성과 자주성을 선포한 문명사적 의미를 지닌다.
아래는 태종 16년 6월 1일 변계량이 올린 상소문의 일부분이다.
(전략)
지금 비를 빌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데, 저는 이것이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비가 오고, 날이 개고, 춥고, 덥고, 바람이 부는 것은 모두 하늘이 하는 일입니다. 지금의 가뭄이 자연의 순리인지, 인간 세상의 잘못이 부른 것인지, 아니면 둘 다 겹친 것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은 바로 하늘이니, 다른 곳에서 해결책을 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옛 유학자도 '무우(舞雩)는 하늘에 제사하여 비를 비는 곳이다'라고 했으니, 옛사람들은 비를 빌 때 반드시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이 분명한데, 어찌 지금은 그리하지 않으십니까?
물론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누가 하늘에 비는 것이 옳은 줄 모르는가? 하지만 천자(天子)는 하늘과 땅에 제사하고, 제후(諸侯)는 산천(山川)에 제사하는 것이 예법의 원칙이다. 그러니 제후국의 임금이 하늘에 직접 제사하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참람(僭濫)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그것은 평상시의 원칙(常經)일 뿐, 지금 같은 재앙은 비상사태(非常之變)에 대처하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절차에 따라 형조나 사헌부에 호소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안이 위급하면 백성이 직접 궁궐의 북을 쳐서 임금께 호소(격고, 擊鼓)하기도 하는데, 지금의 상황이 이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닷새만 비가 안 와도 보리가 마르고, 열흘만 비가 안 와도 벼가 마릅니다. 그런데 벌써 10여 일이 넘도록 비가 내리지 않는데, 아직도 하늘에 제사하기를 망설이는 것이 옳겠습니까?
우리 동방은 단군(檀君)이 시조이신데,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지, 중국 천자가 땅을 떼어 봉해준 제후가 아닙니다. 단군께서 나라를 여신 것이 요임금 시절이었으니 지금까지 3천 년이 넘습니다. 하늘에 제사 지내는 예법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몰라도 천 년 넘게 변함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 태조 대왕(이성계)께서도 이를 더욱 공손히 받드셨으니, 하늘에 제사하는 예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이는 '단군 시절에는 중국과 교류가 없어 임금과 신하의 예법이 없었기에 가능했고, 지금은 명나라의 제후국으로서 분수를 지켜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후가 하늘에 제사한 예는 중국 역사에도 있었습니다. 노(魯)나라는 주공(周公)의 큰 공훈 때문에, 기(杞)나라와 송(宋)나라는 옛 성군(聖君)의 후예라 하여 하늘에 제사하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이는 예법에도 원칙(大體)과 예외적인 규정(曲折)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제가 생각건대, 명나라를 세우신 고황제(주원장)께서는 천하를 통일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드실 때 우리 태조(이성계)의 정성을 아름답게 여겨 우리 조정의 일을 소상히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우리 조정이 하늘에 제사하는 일도 당연히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 후 황제께서는 '의식은 그 나라의 풍속을 따르고, 법은 옛 제도를 지키라'고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조선이 바다 밖의 나라로서 처음부터 하늘의 명을 받아 세워졌음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국가의 법 중에 제사보다 큰 것은 없고, 제사 중에 하늘에 제사하는 것(교천, 郊天)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명나라 황제께서 옛 제도를 지키라 하셨고, 우리 선조들로부터 천 년 넘게 하늘과 기운이 통했으며, 태조께서도 이를 받드셨으니, 우리 동방이 하늘에 제사할 수 있는 이치는 분명합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