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와 공산주의 동질성 집단주의

인류의 보편적 성향은 개인주의

by 김욱

공산주의와 유교 문명이 서로 깊이 호응할 수 있었던 두 번째 핵심 요소는 바로 '집단주의'라는 공통의 세계관이다. 공산주의(Communism)라는 용어 자체가 라틴어 'communis(공동의)'에서 유래했듯, 그 본질은 사적 소유를 부정하고 공동체를 지향하는 데 있다. 동아시아 유교 문명권은 이 개념을 번역할 때 '공산주의(共産主義)'라는 한자를 택했다. '함께(共) 생산한다(産)'는 뜻의 이 번역어는, 번역 행위 자체가 이미 이념의 집단주의적 성격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공산주의의 핵심이 집단주의라면, 유교 문명 또한 그 본질이 집단주의에 닿아 있었다. 유교는 인간을 결코 고립된 개인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 사회,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부여받고, 그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 존재다. 공자가 강조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는 말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정체성과 도덕성은 개인이 홀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주어진 관계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완성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유교의 핵심 경구 역시 이러한 집단주의적 인간관을 명확히 드러낸다. 개인의 수양(修身)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가정을 바로 세우고(齊家), 나라를 다스리며(治國), 궁극적으로 천하를 평화롭게(平天下)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개인의 완성은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이라는 더 큰 목표 안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이처럼 개인을 공동체의 일부로 보고, 집단의 목표를 위해 개인이 기여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익숙했던 유교 사회에, '계급 해방'과 '혁명적 대중'을 강조하는 공산주의는 전혀 낯설거나 이질적인 이념이 아니었다.


반면, 서구 문명에서 공산주의의 등장은 문명의 기본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일이었다. 서구 문명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문명의 최우선 가치로 확립했기 때문이다. 유교 문명권에서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단지 '논어'를 내려놓고 '자본론'을 읽는 수준의 지적 전환이었다면, 서구 문명에서 이는 문명의 뼈대 자체를 해체하고 다시 짜야 하는 근본적인 투쟁을 의미했다. 유교는 정치를 통해 인간의 완성을 추구했지만, 기독교 문명에서 정치는 개인의 구원 과정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족했다. 서구에서 개인은 사회나 국가 이전에, 신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단독자로서 먼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근원적인 질문이 생긴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중 어느 쪽이 더 인간의 보편적인 성향에 가까운가? 인간은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이니 집단주의가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인류의 정신사적 흐름을 깊이 들여다보면 오히려 개인주의가 더 보편적인 경향성을 띤다. 세계의 주요 고등 종교들을 살펴보면 그 목표는 모두 지극히 개인적인 구원과 깨달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불교와 힌두교는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업(業)을 소멸시키고 해탈에 이르는 것을, 기독교와 이슬람은 신과 개인의 일대일 관계를 통해 영혼의 구원을 얻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는다. 깨달음과 구원은 철저히 개인적인 사건이다.


물론 이 종교들은 신앙의 여정을 함께하는 강력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때의 공동체는 어디까지나 각 '개인'의 구원과 해탈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공동체 자체가 개인의 목적을 대신하거나 개인을 흡수하지는 않는다. 반면, 유교나 공산주의가 지향하는 '집단'은 개인의 정체성과 삶의 목적이 집단에 종속된다. 유교에서는 집단에 기여하지 않는 개인은 존재 의미가 없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이상처럼, 개인의 삶은 언제나 공동체라는 더 큰 목적을 위한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개인주의를 인류의 보편적 성향이라고 보는 것은, 개인에 중심을 둔 종교적 전통이 인류 문명 전반에 걸쳐 더 폭넓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서구 문명은 자신들이 이룩한 근대화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인류의 보편적 개인주의를 마치 자신들만의 고유한 '근대성'인 것처럼 포장했다. 그 결과 집단주의는 '전근대적'인 것, 극복해야 할 낡은 유산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어느 한쪽이 우월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대와 사회의 조건에 따라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각기 다른 혁신의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다만 그 철학적 뿌리를 따져보면, 두 가치관의 분기점은 '신(神)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의 궁극적인 충성과 책임은 수직적으로 신을 향한다. 이 절대적인 '수직적 관계'는 국가나 왕 같은 지상의 모든 관계를 상대적으로 수평화시키며, 개인이 집단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이것이 개인주의가 싹틀 수 있었던 토양이다.


반면, 유교는 신이 부재한 인간 중심의 이념이었다. 인간에게 내재적 목적을 부여하는 초월적 존재가 없었기에, 인간은 집단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목표를 찾음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증명해야 했다. 신과의 수직적 관계가 없는 세계에서 그 정점에 있는 것은 가족, 사회, 국가라는 인간들 사이의 수평적 집단이다. 유교 사회에서 집단이 개인의 존재 근거가 되고, 이 집단을 윤리적으로 묶어주는 '명분'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처럼 강력하고 체계적인 유교의 집단주의적 전통은, 공산주의가 제시하는 집단주의적 이상과 너무나도 깊이 호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문명 열한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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