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와 공산주의 동질성 민본주의

유교 문명의 공산혁명은 필연이었다

by 김욱

지난 장에서 동아시아 공산주의의 놀라운 성공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 현상을 단순히 서구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이념의 공백' 때문이라고만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만약 '이념의 공백'이 유일한 원인이었다면, 비슷한 침략을 겪은 다른 문명권에서도 공산주의가 똑같이 성공했어야 한다. 하지만 역사는 다르게 전개되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왜 유독 동아시아 유교 문명권은 공산주의를 가장 강력하게 받아들였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두 이념 사이에 존재했던 모종의 깊은 '구조적 유사성'과 '사상적 호응 관계'를 주목해야 한다.


물론 공산주의는 서구에서 태어났다. 유물론적 변증법, 계급투쟁,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같은 핵심 개념들은 유럽의 산업혁명과 그로 인한 사회 갈등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토양 위에서 형성되었다. 처음 이 개념들을 접했을 때, 동아시아의 유교 지식인들에게 그것은 지극히 낯선 외래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새로운 이념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공산주의를 단순히 수입품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오랜 유교 전통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던 강력한 문화적, 정치적 문법과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그 핵심 연결고리가 바로 '명분(名分)'이었다.


유교 문명은 근본적으로 '명분'으로 움직이는 사회다. 여기서 명분이란 단순한 구실이나 체면을 넘어, '어떤 행위를 정당화하는 도덕적 명목과 정치적 정당성'을 의미한다. 유교 정치에서 왕은 그저 힘이 센 통치자가 아니었다. 그는 '하늘의 뜻(天命)을 받아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명분을 가질 때만 비로소 진정한 군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만약 군주가 폭정을 일삼아 이 명분을 잃으면, 백성들은 저항할 수 있었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는 것 또한 정당화되었다. 이처럼 유교 사회는 누가, 왜 통치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분을 끊임없이 따지고 논쟁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정당성을 창출해야 했다.


반면, 서구 기독교 문명에서 정당성은 인간 사이의 논쟁보다는 초월적 존재인 신으로부터 직접 '부여'되는 성격이 강했다. 성경의 권위나 신의 계시는 인간의 토론을 넘어서는 절대적 기준이었다. 물론 서구에도 '정의로운 전쟁'처럼 명분을 찾는 노력이 있었지만, 정치 행위의 모든 근거를 명분에서 찾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회 전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문화는 동아시아 유교권이 훨씬 더 강했다. 바로 이 차이가 19세기 말 서구의 충격 앞에서 유교 문명이 자신들의 대응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서구 열강의 침략은 동아시아에 심각한 '명분의 위기'를 초래했다. 조선이 멸망한 결정적 이유도 군사력의 약화 이전에 명분의 붕괴에 있었다.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던 '왕조에 대한 충성'이라는 윤리적 정당성을, 당시 조선의 왕조는 더 이상 지식인과 백성들에게 제공하지 못했다. 심지어 일부 지배층은 차라리 일본의 근대화 논리가 '더 나은 명분'이라 여기고 적극적으로 동조하기까지 했다. 명분을 잃은 왕정은 힘없이 무너졌다. 이제 '누가 이 나라를 통치할 정당한 자격을 갖는가?', '진정한 명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동아시아 전체가 직면했다.


바로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공산주의가 등장하여 명쾌한 답을 제시했다. "진정한 명분은 착취당하는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에게 있다." 이 선언은 유교적 사고방식에 익숙했던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놀라울 정도로 익숙한 구조로 다가왔다. 유교에서 하늘의 뜻인 '천명(天命)'이 백성의 마음인 '민심(民心)'에 기초하듯, 공산주의에서 '역사의 필연적 법칙'은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통해 실현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천명 (天命) <---> 역사의 필연적 법칙


민심 (民心) <---> 프롤레타리아 대중


이러한 대응 구조는 공산주의가 단순한 서양의 계급 이론이 아니라, 동아시아인들에게는 '새로운 천명론'이자 '과학적 민본주의'로 받아들여지게 만들었다. 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가 특정 '노동자 계급'을 의미했다면, 제국주의의 압제를 받던 동아시아에서는 그 의미가 '착취당하는 인민 대중 전체' 혹은 '억압받는 민족 전체'로 손쉽게 확장되었다. 즉, 프롤레타리아는 하나의 사회 계층을 넘어, 시대를 이끌어야 할 새로운 도덕적 주체로 격상된 것이다.


이러한 창조적 수용의 바탕에는 유교의 핵심 정치 철학인 '민본주의(民本主義)'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 민본주의란 통치의 근본을 백성에게 두는 사상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백성의 안위'와 '백성의 지지'에서 찾는 철학이다. 이는 군주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민심이 떠나면 권력의 정당성 또한 사라진다는 혁명적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공산주의를 바로 이 민본주의의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버전으로 이해했다.


결론적으로, 유교 문명권은 공산주의를 낯선 외래 이념으로 수입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전통 속에 이미 존재했던 민본주의라는 강력한 철학적 틀을 이용해 그것을 재해석하고 변용하여 수용한 것이다. '역사의 필연적 법칙'은 천명을 세속화한 개념으로, '프롤레타리아'는 민심을 대체하거나 강화하는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명분을 잃고 방황하던 동아시아에, 공산주의는 가장 익숙한 논리 구조를 가진 가장 강력한 새 명분을 제공했던 것이다.



한국 문명 열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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